[정재윤의 독서 칼럼] 소년이 온다, 피 묻은 태극기 뒤의 진실

공권력과 맞서 싸운 광주 시민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개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1980년 5월이었다. 민주적인 나라를 열망하며 평화적인 시위를 이루어 나갔던 시민들에게 총탄이 날아온 것은. 그 총탄은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시민들에게 사정없이 날아들었고 누군가의 가족이, 누군가의 친구가 '여름으로 건너오지 못한 채' 하나 둘 스러져 갔다. 수많은 목숨들이 끊어졌던 5월, '소년이 온다' 는 그 역사의 현장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후유증'으로 시작해 '후유증'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은 사람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동호에게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친구 정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동호의 죽은 친구 정대에게는 도청에 남아 있다 숨이 끊어지게 되는 동호의 소리를 듣게 했다. 또한 동호의 어머니에게는 동호의 죽음이 있던 날, 6시에는 돌아올 것이라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자책감을 불러왔다. 이제 광주는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처럼 삶 자체가 장례식이 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총을 가지고 있음에도 군인들을 향해 쏠 수 없었던 도청 안의 시민들과 달리 군인들은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들 같았다. 그들 자신과 같은 사람인 시민들에게 총칼을 휘둘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사람을 학살하는 일을 그리도 쉽게 저질렀던 것일까. 사실 무시무시하던 군인들도 국가 권력 앞에서는 한낱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 광주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고 철저하게 세뇌되어 온 인형 말이다. '5월 18일, 맑음'이라는 책에서는 군인들의 야만적인 행동이 고통스러운 훈련과 세뇌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공수부대들은 몇달간 휴가도 없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광주에 투입되었다. 몇 달 동안 축적되어왔던 스트레스를 광주에서 풀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화려한 휴일' 이라는 아이러니한 단어로도 불려진다.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군인들의 뒤에는 국가가 있었다. 국가는 뒤에서 교묘히 군인들을 조작해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동호의 질문에 몇십 년 뒤, 선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국가는 누구보다 먼저 국민을 지켜야 하지만 5월 광주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시민들의 항쟁은 결과적으로 군인이 아닌 국가의 공권력과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무참하게 시민들을 학살하고도 피 묻은 태극기와 위선적인 묵념으로 이를 미화하기에 급급했던 국가의 민낮을, 그날의 기억들은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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