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현의 시사 칼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언론이 짓밟은 백범의 소원

 

 

지난 4월 27일 약 4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DMZ 평화 손잡기’ 행사가 열렸다. 강화에서 고성까지 약 500KM 정도의 거리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이어 갔다. 최근 북미관계가 다시 냉각된 가운데, 이 행사에 참여한 4만명은 평화의 통일을 진심으로 원하는 것 같아 씁쓸한 안도감이 들었다.

 

민주주의의 발전인지 과도기인지 시민들은 몇 차례 선거를 빼면 직접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시민은 아침 저녁으로 뉴스를 보며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볼 뿐이다. 따라서 언론은 시민과 국가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시민들은 언론의 눈으로 국가를 감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시민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료를 제공하는 제공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언론의 중립성은 더 이상적인 민주주의 실현의 조건이며 언론은 반드시 이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항상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언론은 자신들만의 색깔에 물들어 자신들의 주관을 사실화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은 언론에 세뇌되어 언론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정부를 평가한다. 통일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고 소리 높이는 사람 중에 “무엇이 가장 평화적이며 남, 북 간의 사회문화적 충동을 최소한으로 하여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스스로 주관을 정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국민을 선동하여 통일을 편가르기와 정치적 장애물로 만드는 행동이, 꿈에서도 소원이 통일이라던 불과 몇 십 년 전 선조들에게 죄스럽진 않은가 묻고 싶다.

 

본인이 처음 글에 대해 배울 때 가장 이상적인 글이라며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글이 있다. 유시민의 ‘증오를 선동하는 극우 언론’(2002.07.02)이라는 칼럼인데 좋은 필력만큼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을 끝으로 본 칼럼을 마무리 하고 자 한다.

 

조선일보는 불장난을 하고 있다. 자기가 선동하는 증오심과 파괴적 열정이 몰고 올지도 모를 참혹한 사태를 책임질 능력도 자세도 없으면서, 군사적 분쟁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는 모든 형태의 노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한다. 다시 조선일보에 묻는다. 당신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햇볕정책을 파기하고, 대화를 중단하고, 지원협력 사업을 막고, 모든 분쟁에 대비한 군사력의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북한이 자신의 ‘죄과’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그리고 공손한 자세로 대화와 지원을 요청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 조선일보의 대안인가. “ 

(출처 : 경향신문, 증오를 선동하는 극우 언론_유시민, 200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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