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다영의 사회 칼럼]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

약자를 위한 배려, 강자의 이미지 관리 그 애매한 경계

어릴 적 나의 꿈은 수화 통역사였다. ‘뉴스 화면 우측 하단 조그만 타원 안에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수화 통역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우리나라의 수화 통역사들은 ‘보여주기 식’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고, 자연스레 수화 통역사를 꿈꾸던 나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때는 2017년, 대선 토론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시기였다. 나도 부모님과 함께 앉아 TV를 시청하였지만 평소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나였기에 대선 토론이 진행될 당시 나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대통령 후보들이 하는 말보다는 화면 속 한 명의 수화 통역사였다. 대통령 후보는 5명, 하지만 수화 통역사는 1명. 수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였지만, 화면을 보자마자 청각장애인들이 1명의 수화통역사가 전하는 5명의 모든 말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아닌 어느 누가 보았더라도 내 생각에 동감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대선 토론 화면을 보면, 2명의 후보자, 사회자까지 각각의 인물에게 각 한 명의 수화 통역사, 즉 3명의 수화 통역사가 번역을 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화면과는 사뭇 다름이 느껴질 것이다. 자료화면을 구하진 못하였지만, 다른 나라의 수화통역 화면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수화통역 화면보다 크기가 큰 나라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사회자와 수화통역사가 한자리에서 대등한 대우를 받으며 방송을 진행하는 국가도 있었다. 이런 국가들에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수화통역 화면은 너무나도 작았고, 수화통역사들이 받는 대우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청각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며, 대선 토론과 같은 중요한 방송들의 정보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여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아마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방송 시작 전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방송 중’이라는 멘트를 내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자막방송은 청각장애인들이 해당 방송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과연 큰 도움이 되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막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들이 방송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장애인을 위한 방송인지, 아니면 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송사의 보여주기식 행동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인 복지정책이 과연 정말 장애인을 위한 정책인지 아닌지, 과연 그 정책들이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정말 깊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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