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혁의 이달의MLB 5월]역대 최악의 불펜, 8회가 두려워진 워싱턴

2019년 5월 18일 내셔널스 파크에서 펼쳐진 워싱턴 내셔널스와 시카고 컵스의 첫 번째 맞대결. 선발 맥스 슈어저가 6이닝 3실점 8탈삼진의 양호한 투구를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3 대 2로 팽팽한 상황. 다음 투수로 올라온 워싱턴의 저스틴 밀러는 7회 초 그만 크리스 브라이언트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고 만다. 하지만 워싱턴은 7회 말 다시 두 점을 따라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5대 4인 8회 초 워싱턴은 곧바로 필승조 카일 바라클로를 투입하며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카일 슈와버와의 13구 승부에서 힘이 빠진 바라클로는 결정적인 투런 홈런을 허용한다. 점수 7대 4, 1분도 지나지 않아 또 한번 더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솔로 홈런이 터져 나온다. 이후 트레아 터너의 실책 등으로 무려 8회에만 5점을 뽑은 시카고 컵스는 멈추지 않고 9회에도 맷 그레이스에게 4점을 뽑는다.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3홈런 게임의 제물이 된 워싱턴 내셔널스는 14-6으로 패배. 선발 맥스 슈어저는 6이닝 3실점, 불펜은 3이닝 11실점. 이제는 하루 일과가 된 워싱턴의 불펜 방화 게임이다.

 

워싱턴은 2일 현재 25승 33패, 같은 지구 5개 팀 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69승 93패 페이스. 불과 2년 전인 2017년 97승으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팀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성적이다. 무엇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명문 워싱턴 내셔널스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2일 현재 워싱턴의 팀 타율은 0.250으로 내셔널리그 9위이지만 4위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0.258과 8리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타율에는 문제가 없다. 홈런, 타점, 득점도 각각 8위, 9위, 9위로 중위권이다. 도루의 경우 33개로 내셔널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발이 문제일까. 현재 메이저리그 탈삼진 1위는 117개의 압도적인 탈삼진 갯수를 기록하고 있는 맥스 슈어저로, 워싱턴 소속이다. 2위는 워싱턴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공동 5위도 역시 워싱턴의 패트릭 코빈이다. 이닝 소화력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워싱턴의 선발 트리오는 이닝 지표에서 각각 3위, 4위,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최고의 선발진을 자랑하는 워싱턴의 문제는 결국 불펜이다. 워싱턴의 불펜 투수들은 8번째로 많은 196번 경기에 나가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적은 174이닝을 소화했다. 선수당 평균 0.88이닝, 한명의 투수가 아웃카운트 두개만 잡고 내려오는 것이다. 워싱턴은 경기당 3.38명의 불펜 투수를 사용했으니, 선발투수의 이닝 부담은 결국 평균 6이닝을 넘어간다. 이는 5명의 선발투수 모두가 1년에 194이닝씩을 던진다고 바꿔 말할수 있다. 하지만 경기당 4~5이닝을 던지는 에릭 페데와 아니발 산체스를 감안한다면 선발 트리오(맥스 슈어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패트릭 코빈)가 부담해야 할 이닝은 더 늘어난다. 페데와 산체스가 경기당 5이닝을 던진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슈어저, 스트라스버그, 코빈이 감당해야 할 이닝 부담은 평균 202이닝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스트라스버그와 코빈의 내구성이 그렇게 견고하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스트라스버그는 2014년 단 한 해만 200이닝을 넘겼고(213이닝),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매해 부상으로 고전했다. 데뷔 10년차인 스트라스버그는 단 3번밖에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유리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패트릭 코빈도 마찬가지. 스트라스버그와 동갑내기인 코빈은 200이닝은 두 번 소화했지만 2014년 어깨 부상으로 1년 반을 통째로 날렸고, 2016년과 2017년 모두 좋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며 부활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통산 규정이닝 소화는 스트라스버그와 마찬가지로 3번이다. 결국 지금의 불펜 이닝 소화력이 1년 내내 이어진다면 워싱턴이 25승이라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인 선발조차도 부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점은 선발의 부상 위험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워싱턴의 잔루율은 62.3%로, 메이저리그 30개 팀 최저이다. 이 말은 워싱턴 불펜진이 주자를 내보냈을때 그 주자가 득점할 확률이 무려 40% 가까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9이닝당 홈런은 1.6개로 메이저리그 28위이고, 땅볼 비율도 38.8%로 메이저리그 28위, 그리고 피안타율은 무려 0.337로 메이저리그 최악인데, 2일 현재 아메리칸리그 타율 1위가 호르헤 폴랑코의 0.335라는 걸 생각한다면, 워싱턴의 불펜 투수들에게는 만나는 모든 타자들이 메이저리그 최고 이상의 타자라는 것이다. 투수들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고, 그들의 실력을 가장 객관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지표인 평균자책점은 어떨까. 워싱턴 불펜진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7.06으로, 압도적인 메이저리그 최하위이다. 또한 이는 라이브 볼 시대가 개막한 1920년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6월 이전 불펜 평균자책점이기도 하다(1위 1974년 볼티모어). 제대로 된 불펜투수 하나 없는 워싱턴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평균자책점이 7.23인 맷 그레이스와 5.48인 카일 바라클로를 필승조로 써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워싱턴은 불펜 평균자책점이 가장 최악이었던 5월 12승17패로 메이저리그 최저 승률 팀인 마이애미의 11승16패와 맞먹는 성적표를 남겼고(2017년 5월 16승12패), 패배한 17경기 중 5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선발투수들은 3실점 이하의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중 한 경기는 선발투수가 이닝이 진행되는 도중 책임주자를 남기고 내려갔을 때 다음 불펜투수가 선발투수의 책임주자를 득점시킴으로써 3실점을 초과한 경기이기 때문에, 워싱턴의 5월 17패 중 선발투수의 부진으로 패배한 경기는 5경기가 채 되지 않는다(맥스 슈어저는 메이저리그 전체 탈삼진 1위, 내셔널리그 이닝 1위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불펜 방화로 인해 단 3승에 그치고 있다. 맥스 슈어저의 조정평균자책점(WRC+)는 올해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을 능가한다). 접전 승부에서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인 불펜이 최악인 워싱턴은 당연히 이 기간 동안 2점차 이내 승부에서는 3승8패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의 불펜이 나락으로 추락한 가장 큰 이유는 파이어볼러가 없다는 것이다. '구속의 시대'로 불릴 만큼 100마일 투수들이 넘쳐나는 지금, 불펜투수의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포알을 연상케하는 빠른 직구이다. 그러나 단 6.1이닝만을 투구한 평균구속 97.7마일의 태너 레이니를 제외한다면, 워싱턴 불펜투수 중 누구도 평균 95마일 이상의 빠른 공을 뿌리지 못한다. MLB.COM에서 집계한 2019년 평균구속 TOP50 안에 워싱턴 선수는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 개막 10여 경기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한 트레버 로젠탈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평균 96마일의 강속구와 현란한 커브로 타자들을 제압하던 카일 바라클로의 강속구는 사라진 지 오래, 이제 바라클로에게는 모든 타자가 간파하는 커브만 남았다. 평균구속은 94마일이지만 타이밍을 뺏는 특유의 투스텝 투구폼과 자신의 직구에 대한 믿음으로 95% 이상을 직구로 투구하여도 언제나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마무리투수 션 두리틀은 시카고 컵스 조 매든 감독의 지적에 따라 자신의 투구폼을 잃어버린 후 94마일의 직구만 뿌리는 배팅볼 투수가 되버렸다. 유일한 파이어볼러인 레이니가 데뷔 첫 멀티 이닝을 소화한 오늘 1.1이닝 무실점(무피안타)로 승리투수가 된 것을 생각한다면 워싱턴의 불펜 보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확실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일(한국시간) 워싱턴 프론트가 불펜 보강을 위해 영입한 선수는 오클랜드에서 방출당한, 강속구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42세의 페르난도 로드니였다. 같은 배경의 토니 쉽(40세)이 이적 후 1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남기고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한 것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아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워싱턴은 올해 오프시즌 선수를 영입하는 데만 뉴욕 양키스를 능가하는 1억 9155만 달러(한화 약 2282억 원)의 거금을 투자하고도 2011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내셔널스를 연인처럼 사랑하는 열렬한 팬으로서, 워싱턴이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FA 미아인, 메이저리그 현역 최다 세이브에 빛나는 크레이그 킴브렐을 중심으로 한 파이어볼러 그룹을 완성시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또한 파이어볼러 그룹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마이애미로부터 트레이드로 테이론 게레로를 영입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트레버 로젠탈의 부활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크레이그 킴브렐이 갈매기를 연상시키는 준비 동작을 취하며 얀 곰스(워싱턴의 주전 포수)의 사인을 받고, 붉은 유니폼을 입은 테이론 게레로의 103마일 직구가 내셔널스 파크 전광판에 찍히며, 트레버 로젠탈이 박수갈채를 받으며 모자를 벗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 내츠(NATS-워싱턴 팬들이 내셔널스(NATIONALS)를 부르는 애칭)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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