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의 생명과학 칼럼] 우리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자연 선택의 실수로 만들어진 오류, 맹점

 

 

먼저 이 글을 아날로그로 읽지 못하시는 많은 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위의 그림에는 단순한 네모 하나와 하트 하나가 그려져 있다.

 

자, 그럼 이제 왼쪽 눈을 가리고 네모를 바라보면서 가까이 가 보도록 하자. 네모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말이다. 네모를 바라보던 우리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한다. 갑자기 옆에 있던 하트가 사라진 것이다. 오른쪽 눈을 가리고 하트를 바라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코앞에 있는 도형을 보지 못하는 걸까?

답은 우리 눈의 구조에 있다. 우리의 눈은 진화했다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사실 그렇게 완벽하게 진화하지는 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앞서 소개한 ‘도형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의 원인인 “맹점(blind spot)”이다.

 

우리의 눈에서 카메라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를 통과한 빛다발은 상하좌우가 바뀌어 안구 뒤쪽의 망막에 상으로 맺힌다. 망막에 있는 빛 수용체가 감지한 빛 정보가 시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신경은 망막 안쪽에 존재한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의 눈(왼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망막이 시신경이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셈이다. 이를 “역망막(inverted retina)”라고 하며, 이로 인해 시신경들은 망막을 뚫고 뇌로 향해야 한다. 재미있게도, 이 시신경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망막을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모여 다발을 이루어 망막을 통과한다. 사무용 책상에서 각종 전선들을 책상 위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내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구멍 때문에 빛 정보가 입력되지 않아 생긴 것이 바로 맹점이다.

 

역망막 현상은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의 눈에서 나타난다. 다만, 우리와 상당히 유사한 눈 구조를 가진 연체동물(문어, 낙지, 오징어)들은 오른쪽 그림과 같이 시신경이 망망 바깥에 있어 맹점이 생기지 않는다.

 

아까의 네모와 하트 실험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만약 맹점이 입력된 빛 정보가 없어 생겨난 것이라면 검은 반점이 보여야 할 테다. 그런데 아까는 글자 자리에 하얀 배경이 채워져 있지 않던가?

 

사실 이것은 우리 뇌의 작은 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뇌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영상을 재구성해 빈 공간을 채워 넣는 건데, 말하자면 부족한 정보를 자연스럽도록 임의로 메꾸는 거다. 비슷한 다른 예로,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으로 검은 점을 응시하면서 점점 가까이 가면 아래 그림의 두 막대가 이어질 것이다.

 

진화는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현대에 이르러 흔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은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의 눈처럼 말이다.

 

진화에는 이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제약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상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연 선택에 따라 최선의 신체를 자손들에게 물려준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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