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지의 시사.문화 칼럼2] 장애인 인권, 나를 위한 투자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장애... 장애와 비(非)장애는 ‘도구’ 하나 차이

 


100명 중 5명. 100명 중 90명. 이 두 가지 수치가 주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아마 전자(5%)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낄 것이고, 반대로 후자(90%)는 상대적으로 많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숫자들이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일까?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8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장애인 등록을 한 사람은 전 국민의 5%가량이다. 100명 중 5명만이 장애인이고, 95명의 절대 다수가 비장애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전 국민의 5%가 장애인인데, 그 중 90%는 태어나서부터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질환 및 사고 등 후천적인 이유로 장애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보통 장애를 갖지 않은 비(非)장애인들의 경우, 장애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할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정말로 크며, 장애인의 삶은 우리와 무관할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장애인과 비(非)장애인은 사실 ‘도구’ 하나 차이로 나뉜 것 뿐이며, 우리는 그저 지금 당장은 ‘운 좋게’ 비장애인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전 국민의 5% 정도만 장애인이기에 우리는 장애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애인이 된 이들의 90%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질환, 사고 등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장애인의 삶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가 겨우 ‘도구’ 혹은 ‘기술’ 하나 차이라는 것도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장애인’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사고를 당해 다리를 쓸 수 없고,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장애인용 승강기나 에스컬레이터, 리프트 등이 없고 계단만 있는 건물의 5층은 결코 갈 수 없을 것이다. ‘굳이 장애인을 위해’ 이러한 건물에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비장애인도 ‘계단’이라는 도구가 없으면 5층 짜리 건물을 오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에는 시력을 교정하는 기술이 생겼기 때문에, 안경을 쓴다고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이 없다면, 안경이 없다면, 눈이 나쁜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앞서 말한 것처럼, 장애인과 비(非)장애인은 사실 ‘도구(혹은 기술)’ 하나 차이로 나뉜 것 뿐이며, 우리는 그저 지금 당장은 ‘운 좋게’ 비장애인의 삶을 살고 있고,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관심해진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결코 타인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이자 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애인의 인권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과연 장애인의 인권은 ‘비장애인의 배려’ 차원의 것일까 아니면 ‘나의 권리와 이익’ 차원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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