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원의 공연 칼럼] “이건 나야! 이 원고가 나라고!”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다만 당신이 돌아갈 곳은 반드시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뮤지컬 호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0년째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원고의 소유권 재판을 이어온 노인이 있다. ‘에바 호프’는 현대 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의 소유권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실화에 바탕을 둔 뮤지컬로 실제 사건에선 “과연 카프카의 원고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인류의 지적 유산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뮤지컬에서는 약간의 각색을 거쳐 실제 판결보다는 호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현재를 둘러싼 과거를 보여주기 때문에 모노드라마처럼 보인다.

 

 

※뮤지컬에서 재구성된 이름으로 작성한 것을 알립니다.

이 기나긴 싸움의 시작은 요제프(프란츠 카프카)가 죽은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제프 클라인은 자신의 친구 베르트에게 자신의 미발표 원고를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베르트는 그 원고의 가치를 알아보고 원고를 지키는데 몰두한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베르트는 요제프의 원고를 자신의 연인 마리에게 맡긴다. 그러나 유대인이었던 마리는 그의 딸 호프와 유대인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극한 상황인 그곳에서 마리가 의존할 수 있었던 것은 원고만 갖고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베르트를 만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마리는 점점 원고에 집착하게 되고, 그런 그를 독일군은 수상히 여겼다. 그들에게서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호프는 다른 유대인을 고발해 죽게 만든다. 얼마 후 전쟁이 끝났지만 베르트는 마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계속 원고에 집착했다. 호프는 이런 인생을 살기 싫어 엄마에게서 뛰쳐나갔지만 수십 년 후 다시 돌아와 마리가 남긴 유일한 유산인 원고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호프는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원고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마리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남은 것이 원고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유대인들을 고발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이것들이 지금의 호프를 만든 것이다. 호프에서 특이한 점은 원고가 의인화된 형태인 K로 무대에 등장한다. K는 누구에게도 읽힌 적이 없는 원고이자 호프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봐온 존재이다. K는 호프가 그녀의 삶을 살길 바라지만 호프는 이미 30년간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호프는 후반부에 모든 감정을 토한다, 원고가 없어도 자신은 '에바 호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걸린 수많은 시간들이 호프의 감정으로 스쳐가고, 오랜 세월 원고를 지키면서 겪었던 호프의 감정이 다 몰아친다. K도 그걸 알기에 그동안 호프 곁을 묵묵히 지켰고,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그녀를 마침내 안아준다. 비록 재판에서는 패했지만 자신의 인생을 찾게 되었고, 과거의 기억들과 작별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호프의 원고같은 존재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현재의 각박한 현실을 버티게 해주고 견디게 해주는 존재. 적지 않은 이들은 이런 대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매달려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이런 ‘호프’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잘 견뎌왔다 위로하고 변화하기 늦지 않았다며 응원한다. 호프를 끌어안아주는 K의 모습처럼.

 

뮤지컬 호프는 창작 뮤지컬로, 원래 이 작품은 아르코-한예종 뮤지컬 창작학교의 졸업작품이었다. 내부 심사를 거쳐 신작 실연의 기회를 얻어 김선영·차지연 주연으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어 지난 26일 막을 내렸다.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몰라. 전부를 잃고 남은 게 하나라면 그 하나를 위해 난 전부를 걸어. 그게 내 유일한 세상, 그게 내 유일한 일상, 내가 쉴 곳 내 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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