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현의 역사 칼럼] 조선 시대의 지리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들

조선시대에는 유독 지리와 지리서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따른 많은 지리서들이 등장하게 된다. 조선 시대의 지리서들은 크게 조선 전기의 지리서와 조선 후기의 지리서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지리서들은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관찬 지리지가 주를 이루었다. 또한 주로 국가 통치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중심으로 제작 되어 국가의 연혁, 강역, 산물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료를 항목별로 묶어 백과사전식 나열과, 개략적이고 관념적인 서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중화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에 반해서, 조선 후기의 지리서들은 중화사상에서 탈피하고 자주적이며 실용적인 학풍을 중대하였고, 사찬지리지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편찬되었다. 특정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주관적, 설명식 서술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시대 상황에 따라서 같은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다양한 방식과 가치관이 개입되는데, 오늘날과 과거를 비교하여도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주변 자연환경을 중심적으로 관찰했다면, 오늘날은 주변 인문적 환경이 어떤지, 교통이 편리하고 재화와 서비스 능력을 충당할 수 있는 중심지의 여부나 거리, 동네의 땅값 등을 중심적으로 보는 것을 보면 시간에 따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당시 사회의 분위기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지리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현존하는 동양최고의 세계지도이며, 일본 료코쿠대학에 사본이 있다. 조선초기 태종때 아라비아, 원나라, 일본지도를 참고해 제작한 지도이다. 우리국토는 정확한 편이며 아프리카대륙과 강이 있으나 아메리카는 빠져있다.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가장 정확한 지도였다. 학생의 입장에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사회탐구 과목으로 '지리'를 선택 했다면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수업자료 등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개인적으로 이 지도는 우리나라의 중화사상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지도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중국이 압도적인 느낌을 볼 수 있다. 중화사상에서 벗어난 지도와 비교했을 시에 재밌는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끝에 있는 우리나라가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의 대륙 모습을 꽤나 비슷하게 그려놓은 점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인구, 거리, 면적 등을 정확한 숫자로 표현하였고 자연과 인문 경관을 포괄하여 지역성 파악이 가능하다. 각 도의 연혁, 고적, 물산, 지세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세종실록 163권 중 제 148권에서 155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후에 나온 '동국여지승람'의 연원이 되었다.

 

조선방역지도-현재 국보 재24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이다. 3단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맨 윗부분에는 ‘조선방역지도’라는 제목이 적혀있고 중간부분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맨 아래 부분에는 지도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직·성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도에는 조선8도의 주현(州縣)과 수영(水營) 및 병영(兵營)이 표시되었는데 특히 각 군과 현마다 색을 다르게 하여 알아보기 쉽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산과 강의 경계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다. 지도의 형태는 지금의 전국지도 모습과 매우 비슷하나 북쪽으로는 만주지역과 남쪽으로는 제주도, 대마도까지 표시하였다. 동쪽의 울릉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만주와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한 것에서 조선 전기 영토의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지리서

대동여지도- 김정호가 저술한 것으로, 목판본으로 대량인쇄가 가능했으며, 분첩절첩식으로 제작되어 간편한 휴대가 가능했다. 또한 도로에 10리마다 방점을 찍어 거리를 계산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 또한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의 표시가 정밀하다. 그러나 산의 정확한 고도는 알 수 없다. 대동 여지도의 크기는 세로가 6미터가 넘기 때문에 전시 할 때는 거의 눞여서 전시한다. 2018년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지도 예찬' 행사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다른 지도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아주 상세히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지도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방강역고- 정약용이 저술한 것으로, 중화사상을 탈피했다. 발해까지 우리영토로 포함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표현하였다. 조선 순조 때의 실학자인 정약용이 저술한 한국의 역대 강역에 대한 연구서이다. 아방강역고는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택리지- 이중환이 직접 전국을 답사하여 편찬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적인 인문 지리서이다. 생활권을 중심으로 자연환경, 풍속, 인물 등을 종합적으로 서술했다. 가거지의 조건으로 지리, 생리, 산수, 인심 을 고려하였고, 특히 생리 조선을 강조하였다. 원본과 함께 팔역지(八域誌), 팔역가거지(八域可居地),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 동국총화록(東國總貨錄), 형가승람(形家勝覽), 팔도비밀지지(八道秘密地誌) 등의 조금씩 변형, 개보한 여러 필사본이 전하여 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사실 택리지의 일부분을 번역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저 간단히 위치에 대해서만 서술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듯이 설명해 놨기 때문에 '지리서' 라는 편견 없이 볼 수 있었던 것 같고, 지역이나 지형마다 사람들의 각각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생활모습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 등을 형성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지리서들이 많이 발전되었는데, 단순히 지리만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당시 여러 인문적 요인들을 많이 다루고 있고 당시 사람들의 사상이나 가치관 등을 다루고 있어 사회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같고, 과거 사람들의 모습, 생각 등을 알 수 있게 해주어 오늘날과 과거를 비교 할 수 있게 해주고 옛 사람들 모습을 두루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과거 선조들의 국내 영토와 지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참조: 이중환의 택리지(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Taeckriji_in_museu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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