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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독립운동을 이끌다, 유관순 열사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하라

 

유관순 열사.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다.

 

유관순 열사는 김마리아(일본에서 숨겨온 독립선언서 전파), 김원벽(독립운동의 선봉), 손병희(민족대표 33인의 중심, 독립선언식 주도), 이승훈(독립선언서 서명 추진), 한용운(3·1운동 계획, 독립선언서 낭독)을 포함한 3.1운동의 중심 인물이다.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과 같이 '의사'가 아닌 '열사'라는 호칭이 붙은 이유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유관순(柳寬順)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양력 기준) 충남 천안군 동면(東面) 용두리(龍頭里)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유중권(柳重權), 어머니는 이소제(李少梯)로, 5남매 가운데 둘째 딸이었다. 아버지 유중권은 기독교 감리교의 개화 인사로서, 향리에 흥호(興湖) 학교를 세울 만큼의 계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유빈기(柳斌基), 조인원(趙仁元) 등과 함께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유관순은 또한 감리교에 입교하여 신앙심을 키웠고, 민족의식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유관순은 1910년대 일제의 무단정치를 경험하면서 민족의 암담한 현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유관순은 감리교 순회 선교사의 추천으로 1915년 이화학당의 편입하게 된다. 이화학당에서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의 덕으로 열심히 학문을 공부하면서도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18년 1월 8일,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지침으로 천명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었다.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란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이는 1차 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식민지를 내놓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 따라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승전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지식인들은 승전국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상은 3.1운동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일제는 한국 민족의 독립운동을 억제하기 위해서 정치성을 가진 모든 사회단체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따라서 3․1운동 초기에는 조직과 단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종교계와 학생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천도교, 기독교 등에서는 각각의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방략을 협의하였다. 서울의 학생들 또한 전문학교 대표들이 회합을 갖고, 각 학교별로 대표를 선임하여 독립운동 계획을 추진했다. 이처럼 따로 추진되던 독립운동 계획은 천도교 측의 연합 전선 형성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민족대표의 선정, 거사일, 독립선언서 배포의 역할 분담, 불교계의 동참 등 3․1운동에 대한 중요한 합의를 이뤄낸다.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학생들은 조선기독교청년회(YMCA)로부터 천도교와 기독교가 연합하였으니 독립운동에 동참하라는 통지를 받는다. 이에 학생들 또한 연합 전선에 참가하여 상황에 따라 학생 독자적으로 독립선언 대회를 개최할 것 등을 결의한다. 이로써 천도교, 기독교, 불교, 학생이 참여한 민족대연합전선이 구축된다.

 

거사일자는 3월 3일의 광무황제 국장일과 3월 2일의 일요일을 피하고, 국장에 참배하기 위해 상경한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해 3월 1일로 결정한다. 2월 28일, 민족 대표들은 최종 모임을 가지며 동일한 행동을 취할 것과 체포되더라도 그 동안의 경과를 정정당당히 밝힐 것을 결의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사정상 불참한 4인을 제외한 29인의 민족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 이들의 독립선언식은 간단히 끝났지만, 탑골공원에서 수천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자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 이후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3․1운동의 시작을 맞이한다.

 

유관순 또한 3․1운동 추진 계획을 이화학당 비밀결사인 이문회(以文會) 선배들을 통하여 감지하고 있었다. 유관순은 거사 전날 다른 학생들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세시위에 참가하기로 다짐한다. 3월 1일 탑골공원을 나온 만세 시위대가 학교 앞을 지나자, 유관순은 "너희들을 고생시킬 수는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뒷담을 넘어 시위운동에 동참한다. 이로써 선생은 최대의 항일 민족독립운동이자 민족혁명운동인 3․1운동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게 된다. 또 3월 5일, 유관순은 시위 결사대 동지들과 함께 서울에서 전개된 최대의 시위운동인 남대문역(서울역) 만세 시위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학생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3월 10일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대한 임시휴교령을 반포한다. 이에 불구하고 유관순은 3월 13일, 사촌 언니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귀향하여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만세 시위운동을 추진한다. 거사 당일, 유관순은 대중들 앞에서 뜨거운 열변을 토해내고, 이러한 연설은 군중들의 애국심을 한층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아우내 장터의 독립선언식이 거행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함으로써 약식의 독립선언식을 가졌다. 그런 다음 3천여 명의 군중들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한다. 이에 병천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은 총검을 휘두르며 만세 시위운동을 탄압한다. 나중에는 천안 일본군 헌병분대원들과 수비대원들 또한 도착하여 시위 운동자들을 학살하고, 결국 19명의 사망자와 3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 때 유관순의 아버지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에 의해 찔려 순국하고, 이를 보고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달려 들다가 어머니마저도 학살당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유관순은 아버지의 시신을 둘러메고 병천 헌병주재소로 쇄도하여 항의 시위를 계속한다.


격분한 유관순과 그녀의 숙부는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면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밝혔다. 나아가 시위 군중들은 헌병들이 강탈했던 태극기를 도로 빼앗아 휘두르며 주재소를 습격할 태세를 보였다. 이에 헌병들은 재차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시위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그 날 저녁 유관순을 포함한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여 천안헌병대로 압송한다.

 

유관순은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치기까지 한다. 또, 다른 감옥으로 이송될 때에는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독립만세를 연이어 고창하기도 하였다. 유관순은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된 유관순은 아침 저녁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함으로써 수감자들의 항일 독립의지를 고취한다. 유관순은 서대문감옥에서의 온갖 탄압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만세를 불렀고,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서는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한다. 이로 인해 유관순은 지하 감방에 감금되고,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다. 그리하여 결국 선생은 고문으로 인해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한다. (실제로 순국한 나이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지만, 16세~18세 사이로 추정된다.)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16살 나이로 독립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한 독립운동의 상징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데 이어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유관순 열사가 5만원권 지폐 모델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연이 공개되었다. 한국 조폐공사 관계자는 "유관순 열사가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 였지만 초상화 때문에 결국 보류됐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가 일제의 만행으로 눈 주변이나 얼굴이 부어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고문 받기 전 초상화를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고, 결국 5만원권 지폐 모델은 신사임당으로 결정되었는 후문이다.

 

그 날의 유관순의 외침은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3.1절은 우리에게 마냥 '쉬는 날'이 아닌,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불꽃을 지핀 중요한 날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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