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종백의 축구 르네상스] 공존했던 두 태양의 작별 인사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밤이 지나 다시 아침이 되면 또다시 해가 뜨기 마련이다.

 

지난 2013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축구 대표팀의 두 태양, 구자철(FC 아우크스부르크)과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해(2008년)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첫 발을 내디딘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그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이번 류축르에서는 두 선수가 걸어온 길과 너무나도 진하게 남은 그들의 발자국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THANK YOU 2008 - 2019

두 별이 진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두 태양이 진다. 2010년 대 한국 축구를 풍미했던 두 태양이 진다.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공교롭게도 둘은 2008년에 혜성같이 등장해 10여 년이라는 세월을 불태우고 같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두 선수 모두 K리그가 낳은 산물이라는 점에서 류축르의 마음은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구자철은 2007년, 제주 유나이티드의 감귤색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기성용은 2006년 FC서울의 로쏘네리 유니폼을 입었다. 비록 경기에 뛰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 되어서야지만 말이다. 

 

# 둘이 함께 걸어온 발자국

A매치 데뷔 연도와 은퇴 연도가 같은 둘은 대부분의 대회에 함께 출전해 대한민국을 위해 뛰었다. 

 

I. 유종의 미를 거둔 'AFC Asian CUP QATAR 2011'

많은 축구팬들에게 박지성, 이영표의 마지막 대회로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대회이다. 비록 4강에서 숙적 일본에 패하며 쓴 잔을 마시긴 했지만 그래도 '두 개의 심장' 박지성과 '초롱이' 이영표의 마지막 무대이니 기억에 남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구자철의 활약이 특히 돋보인 대회이기도 하다.  조예선 경기부터 우즈베크와의 3·4위전 경기까지 총 5골을 기록한 구자철은 대회 득점 왕을 수상하며 골잡이의 면모를 보여줬다. 나아가 대회 직후 유럽의 여러 클럽에서 러브콜 받기도 했는데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의 유니폼을 입으며 마침내 유럽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구자철에게 11' 아시안컵이 해외 진출의 계기가 된 대회였다면 당시 이미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 FC에서 뛰고 있던 기성용은 화끈한 세리머니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과의 4강전 경기에서 얻은 PK를 선제 득점으로 연결시킨 그가 세리머니 과정에서 중계 카메라를 향해 원숭이 흉내를 낸 것이다. 물론 상대를 비하하는 행위는 스포츠 맨십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세리머니가 일본 관중이 내건 욱일기를 보고 화가 나 한 것으로 밝혀지자 축구팬들은 일본 관중의 태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II. 새로운 역사를 써내린 '2012 Summer Olympics Games of the XXX Olympiad'

한국 축구가 올림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회이다. 개최국 영국 단일팀을 8강에서 무찌르는 등의 선전을 이어나간 축구대표팀은 사상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서 남자축구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 대회에 주장으로 참가한 구자철은 그 누구보다 경기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특히 일본과의 3·4위전에서는 직접 해결사로 나섰다. 후반 10분이 조금 지난 시간, 길게 넘어온 공을 트래핑 한 그는 상대 수비수의 적극적인 방해에도 집중력을 유지하며 발리슛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심판의 판정에도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승리에 대한 투혼을 보여주었다. 구자철 선수가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그 장면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바가 있다. 

 

기성용은 중원 사령관 역할을 톡톡히 해주며 경기를 장악해나갔고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영국 단일팀과의 8강 승부차기에서는 마지막 키커로 나서 대한민국의 4강행을 알렸다.

 

III. 아쉽지만 최선을 다한 '2014 FIFA WORLD CUP BRASIL'

축구팬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1무 2패로 조예선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 둘은 함께했다. 구자철은 런던 올림픽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주장으로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냈고 알제리와의 조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추격골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한편 기성용은 조예선 3경기에 모두 출전, 팀 내 최고 평점을 받으며 베테랑의 면모를 과시했다.

 

IV. 하나가 되어 기적을 이룬 '2018 FIFA WORLD CUP RUSSIA'

전차군단을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지워버린 대회이다. 류축르는 시험기간 이었던 터라 방에서 숨어서 경기를 보다가 VAR 검토 끝에 김영권(감바 오사카)의 첫 골이 확정된 이후 소리를 질러 걸렸던 기억이 있다. 

 

14' 브라질 월드컵과 반대로 기성용이 주장완장을 착용했고 구자철이 '베테랑 형'으로서 팀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2차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독일과의 3차전 경기에서 뛸 수 없게 된 기성용을 위해 '친구' 구자철이 더 열심히 뛰었기에 전차군단 독일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사실 기성용은 지난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뒤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듯했다. 하지만 월드컵 직후 새로 부임한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의 적극적인 만류 끝에 아시안컵까지는 조국을 위해 뛰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V. 그들의 마지막 발걸음. 'AFC Asian CUP UAE 2019'

8강에서 탈락하며 대표팀은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개최지를 떠나야 했다. 그야말로 아쉬움 그 자체였다. 59년 만의 아시아 탈환을 겨냥했지만 결국 4년 뒤를 기약하게 됐다. 

 

기성용은 부상으로 인한 소속팀으로의 조기 복귀를 확정 지은 후 개인 SNS 계정에 'THANK GOD IT'S FINALLY OVER(드디어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은퇴를 암시했다. 지난 여름 이후 대표팀 은퇴에 대한 언급이 잦았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중원 사령관'의 은퇴를 받아들이자니 너무 아쉽다는 것이 축구팬들의 입장이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지만 부상으로 일찌감치 소속팀 뉴캐슬로 조기 복귀한 기성용의 공백은 너무나도 컸다. 많은 축구팬들이 그가 없는 경기를 보며 '저 상황에서 기성용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편 대회 일정을 모두 소화한 구자철은 탈락이 확정되던 카타르와의 8강 전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직접적으로 은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 11월 다녀온 호주 원정 평가전 이후 무릎에 찬 물을 주사기로 빼줘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언제부턴가 대표팀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입을 연 그는 한국 축구를 위한 것이라면,  더이상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은퇴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는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며 말을 줄였다. 

 

 

# 훈훈하게 마무리된 기성용의 구글거림

'구글거림' 한때 SNS에 오글거리는 말들을 올리던 구자철을 보고 기성용이 한 말이다. 두 선수가 SNS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통해 팬들은 경기장 밖 선수들의 모습에 큰 웃음을 얻었다. '유학파' 기성용이 항의 과정에서 'Why?'만을 반복하는 구자철을 향해 '왜라고만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냐?'라며 맞장구치고 사소한 거에도 서로를 언급하며 마치 '톰과 제리'같은 모습을 보여준 두 선수였지만 마무리는 너무나도 훈훈했다. 공식적인 은퇴 발표 후 기성용은 구자철을 태그하며 '함께할 수 있어 네가(구자철) 가장 고생 많았다'라며 지난 10여 년을 회상했다.

 

 

# GOOD BYE MY CAPTAINS

두 주장이 떠난다. 공존할 수 없는 두 태양이 작별 인사를 고한다. 더 이상 경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고 조국의 승리를 위해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90분이라는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웠던 두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고맙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70회 이상의 A매치 경기를 소화한 선수들에게 축구 협회는 선수 대우 차원에서 공식 은퇴식을 진행해주고 있는데 이 두 선수의 은퇴경기는 3월 말에 있을 A매치 주관이 유력하다. 상대 및 정확한 날짜 미정.)

 

 

대한축구협회에서 올린 구자철과 기성용의 공식 은퇴 선언 포스터이다. 두 선수가 주로 달았던 등번호 13과 16을 나란히 놓으니 마치 '크다'를 뜻하는 영어단어 'BIG'을 연상케한다. 한국 축구의 큰 두 선수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난다.

 

 

고맙습니다.

공존했던 두 태양, 그 두 태양이 동시에 지는 탓에 당분간은 두 배로 어두울 것 같네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이제 조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대표팀 응원해요.

Thankyou for my Legends

 

 

* [류종백의 축구 르네상스]는 경기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 축구계의 트렌드를 알기 쉽게 읽어주는 축구 전문 칼럼입니다.

 

글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발전하기 위해 저자세로 배워나가고자 합니다. 읽으면서 불편하셨던 부분이나 잘못된 내용, 다음 주제 추천 등을 메일(vamos_2002@daum.net)로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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