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의 심각한 상태

석굴암에 대하여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의하면 1688년 5월 15일에 정시한이 이곳을 찾았을 때 석굴암은 특별한 이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조선말기에 와서 울산병사 조예상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다. 그리고 1907년경 우연한 기회에 우편배달부가 일본인에게 석실이 있음을 알렸고, 그 말에 따라 발견했다고 전하여, 마치 석굴암을 지하동굴에서 처음 발굴한 듯 과장하여 선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오히려 토함산에서 석불이 발견되었다는 극적인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그 뒤 일본인 무뢰한들이 수많은 탑상들을 반출해가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적지 않은 파손행위까지 따르게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소규모적인 반출 및 탈취는 일제에 의하여 석굴암 자체의 해체, 운반이라는 계획까지를 세우게 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가 이미 그들의 소유가 되자 그들은 굳이 석굴을 해체하여 반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또 현지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이 계획은 좌절되었다.

 

 

1912년 초대총독인 데라우치가 이곳을 방문한 뒤 총독부는 석굴암 중수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였다. 이 시기의 중수는 전후 세 차례에 걸쳐 행해졌는데, 제1차는 1913∼1915년, 제2차는 1917년, 제3차는 1920∼1923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1차 중수는 거의 완전 해체하는 복원공사였다. 1913년 10월에 착공된 1차 중수는 우선 천장부분에 목제 가구를 설치하여 해체공사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1914년 본 공사에 들어가 석굴을 완전히 해체하고, 1915년 5월에 최종공정인 석굴 재조립 공사를 완료하였다. 이 당시 그들은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등장한 시멘트의 효능을 믿고 이 석조물 조립에 시멘트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석굴암 본존상에 큰 문제거리를 남기는 결과가 되었다. 석조물에 시멘트를 혼합하여 석조물을 약화시켰고, 석굴을 하나의 응결된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완벽한 정리를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뒤의 교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1차 중수의 결점은 준공 후 2년이 못되어 굴내의 누수현상(돌 틈으로 물이 새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누수의 양이 점차로 많아져 1917년 7월에 그 방지를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2차 중수이다. 하지만 이 공사 또한 굴 상부 봉토면에 대한 응급조치에 그쳐 누수·오탁에 대한 근복적인 검토가 없었으므로 그 뒤 3년만에 다시 대규모의 중수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차 중수는 최초의 중수과정에서 미술품을 손상시켰다는 것과 옛 주위의 경관을 파괴했다는 점 때문에 행하여졌다. 굴 입구의 석축 및 입구 홍예 위에 놓은 석축은 마치 터널과 같이 보인 점이 미술부문의 전문가에 의하여 비판되었다. 또, 한가지 이유는 2차 중수에도 불구하고 누수 및 침수의 현상이 계속되었으며, 굴내에는 많은 습기가 차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 근본적인 결점들은 다시 수리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중수 이후에도 결로와 침수의 현상은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부분적으로 또는 일시적인 보수가 항시 뒤따랐다. 그러나 1차 공사에서 잘못 배치된 상들과 굴의 구조는 그대로 묵과된 채 아무런 수정도 가하지 못하였다. 광복 후 석굴암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상태에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인들의 중수에 빚어진 모순과 그로 인하여 발생된 가속적인 퇴락은 더 심해갔다.

 

1961년에 들어서 각계각층의 깊은 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석굴암에 대한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측면의 조사와 연구에 이어서 석굴암의 전면적인 중수가 시작되었다. 침수·결로 등 습기를 피하기 위하여 굴내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고, 그에 따라 굴을 외기(外氣)에 차단시키고 인위적으로 석굴의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복원작업은 1962∼1964년까지 3년이 소요되었다.

 

 1970년대 중반경에는 결국 석굴암의 과학적 보존을 위해 전실 앞부분에 유리로 차단막을 설치함으로서 일반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최근 52억원을 들여 석굴암을 보존하기 위해 석굴암 부근에 모형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문화재 주변 환경훼손을 우려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환경운동단체가 연대해 석굴암 복제 모형관을 짓겠다는 불국사의 계획에 대한 저지운동에 나섰으며, 2002년 3월 7일 문화재청은 이 계획을 재검토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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