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뉴스

대한민국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반드시 들어보았을 말, ‘입시’.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여러 전형의 수시들, 최근 찬반 논란이 되고 있는 특목·자사고들의 학생 우선 선발권 폐지 및 동시 선발 실시 등등.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요즈음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영어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4학년정도까지의 수학을 미리 배우며 쉴 새 없이 학원에 다닌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의대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학생들은 심지어 의대 예비반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따로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 학원에 다니기 위하여 그 학원에 등록을 도와주는 이른바 ‘새끼학원’에 다닌다.

 

그러나 막상 사회의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대학들에서는 이과 학생들에게 따로 고등학교 수학을 다시 가르쳐주는 반을 따로 만들기도 하고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 학생들 중 일부에게 고등학교 때 배웠던 영문법을 다시 가르치는 교수를 따로 두는 등 예전에 비하여 학업에 대한 몰입도는 훨씬 증가하였으나 그 결과는 반비례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학업적인 문제의 측면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스스로의 일을 결단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말인 즉슨,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작다는 것이다. ‘입시’라는 틀에 맞추어 길러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본 시간도, 이유도, 계기도,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들의 진로는 대체적으로 어떻게 정해질까?’라는 질문에는 많은 학생들이 답변하기 어려워한다. 대체적으로 학생 스스로의 의견보다는 가족들의 의견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의사가 되겠지, 우리 애는 판·검사정도는 해야지’와 같이 개인의 지망보다도 외적인 주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발성의 문제 외에 사고의 문제도 있다. ‘이건 이렇게 하면, 저건 저렇게 끼워맞추면 해결될 것 같은데’처럼 많은 문제들을 정형화된 방식으로만 해결하고자 한다. 방대한 양을 ‘답을 추구하며’ 빠르게 풀고자 달리다보니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대학교에 가서도 과제를 사설 학원에 의존하거나 전공학과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짐에 따라 성인이 되었지만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적어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을 학업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은 지양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궁극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고 개개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국어, 영어, 수학을 풀고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며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을 길러간다. 이럴 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교사이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최근 학교 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서로를 상처 입히고 헐뜯는 모습에서 넘어 이제는 점점 살인 행위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벌써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훗날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생각해보았을 때 그리 긍정적인 측면으로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한 번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입은 학생들은 쉽게 낫지 못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해자들을 벌하는 모습이 적거나 없다면 가해자들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것이다. 학교폭력은 학생들 간의 배려와 협동, 가해자에 대한 처벌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의 한 측면이다.

 

 

다른 예를 하나면 더 들어보겠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남혐, 여혐 표현들. 이제는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도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다는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아직 자아 정체성도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벌써 저런 표현들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럴 때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학업을 중시하는 교육만으로 학교폭력이 해결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잘한다고 해서 사회 속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지나치게 학업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심지어 그 학업 우수성은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고 문제를 누가 얼마나 더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 점수를 얻느냐하는 방식으로 평가한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직접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교육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동시에 인성 교육이나 사회생활의 적응에 대한 교육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잘못이 있다면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교육은 거의 없다. 실질적으로 교육이 추구해야할 목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호 간의 배려와 사랑을 통한 협동 등의 활동이다. 누군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손을 내밀어주고 서로 돕는 사회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역할이다. 한국의 교육은 아직 그런 선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 본질을 잊지 않고 올바른 교육이 대한민국에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