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의 수의학 칼럼 8] 동물원을 없애야 할까요?

전시동물 - 행동 풍부화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던 북극곰 통키 - 동물원 동물들도 은퇴할 수 있을까

 

 

 

 

 

에버랜드에 있던 국내 유일의 북극곰 통키가 영국 이전을 한 달가량 앞두고 숨졌다. 현재 24살로 고령인 통키는 11월 영국 요크셔 야생공원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요크셔 야생공원은 국제북극곰협회와 보전활동을 진행할 정도로 북극곰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갖춘 생태형 공원으로, 전시보다 북극곰의 거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현존하는 북극곰의 인공거주시설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곳이라고 한다. 동물원에서 전시목적으로 사육되는 동물들도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동물권단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주가 결정되었었다. 무엇보다도 통키의 이주가 전시동물의 은퇴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좋은 환경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숨진 통키를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8년 갇힌 퓨마 호롱이 - 4시간 뛰놀다 죽다

 

 

 

 

지난 9월 대전동물원에 있던 퓨마 호롱이가 사육사 부주의로 문이 잠겨있지 않아 탈출했다. 대전시는 안전 안내문자를 통해 시민들에게 퓨마 탈출 소식, 포획 진행 중인 소식을 알렸고, 10시경 탈출한 퓨마 1마리를 사살했다고 알렸다. 호롱이는 8년생 암컷으로 성격이 온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8년간 갇혀 지낸 호롱이는 우리 밖으로 처음 나와서, 4시간 정도 동물원 내에서 배회했던 것으로 알려져 과도한 사살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동물원 내에 가만히 있었으면 마취총을 더 사용해 생포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었다. 호롱이의 죽음을 계기로 동물원 내 야생동물들의 복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 만지기·먹이주기 체험 - 교육적인가요

 

 

 

 

체험동물원들이 울타리 없는 교감이라는 문구로 동물체험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동물과 관람객이 접촉하면서 무분별한 먹이주기 체험도 진행되고 있는데, 인수공통감염병 전파와 안전사고 발생위험이 크고, 생물 종에 적합하지 않은 먹이를 줄 경우 동물에게 질병 및 영양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다. 동물원은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으로 야생동물을 직접 보게 되는 장소인데, 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을 관찰함으로써 동물 생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얻기 어렵고, 만지고 먹이를 주는 경험으로 야생동물을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인식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처음 만나는 동물을 마음대로 만지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동물원을 없애야 할까 필요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자 동물원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빗발치고 있고, 일부 동물보호단체 역시 동물원 존재를 재고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조건 동물원 폐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가둬두고 관람만 하는 곳이 아니다.

현대 동물원에는 ‘생물다양성 보전’과 ‘교육’이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단순한 종 보전이 아닌 생물다양성 보전을 추구해야 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개체보호를 하지 않았다면, 이미 멸종됐을 동물도 있다. 단순히 동물을 가둬두고 전시하는 곳이 아닌 동물원의 진짜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동물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UN이 정한 세계 생물다양성 기간이다.

 

프랑스 리옹동물원은 보유동물의 51%가 멸종위기종이며, 번식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동물 수도 50%이상이다. 최대한 야생과 가까운 환경을 조성해서 보여주는 것이 생물다양성도 보전하고 교육효과도 가장 좋다고 강조하면서, 갖춰진 생태계에서 관람하는 ‘몰입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본의 JAZA(일본동물원수족관협회)에서도 종보전 노력에 힘쓰고 있다. 일본에서는 1971년 멸종된 황새를 성공적으로 복원하고 야생방사를 시켜, 일본에서 멸종됐던 황새는 작년 기준 118마리까지 늘어났다. 동물 탈출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국내 동물원의 노력도 계속 되고 있다. 서울대공원도 동물원 외곽에 동물탈출방지 펜스 및 포획유도 울타리를 설치했고, 동물탈출 상황을 대비한 모의훈련도 한다. 이번 사건 발생 이후 동물탈출 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대응매뉴얼은 이미 수 년 전에 만들어졌다. 단지 이것을 지키지 않고 관리가 소홀한 곳이 있는 것이다.

 

동물원 속 동물들의 행복을 위한 노력 - 동물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동물원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온전히 보호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스트레스는 정형행동으로 드러난다. 몸의 일부를 계속 긁거나, 의미 없이 몸을 흔들거나, 제자리를 빙빙 돌거나 하는 이상행동으로 고통을 표현한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행동풍부화란 동물원에 전시되어 있는 동물들에게 야생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정신적 자극들과 유사한 물체, 냄새, 소리 등에 변화를 주고 야생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행동과 습성을 유발시켜, 동물들의 생활을 전보다 생기 있게 유지시켜 주는 활동을 의미한다. 전시동물들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킴으로써 정형행동을 방지하는 것이다.

 

캐나다와 미국에 위치한 동물원 4곳의 행동풍부화를 위한 노력을 살펴보면,

 

토론토 동물원 (캐나다)

토론토 동물원은 우수한 교육 및 보존 활동으로 캐나다 최고의 동물원이자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곳이다. 토론토 동물원은 “Daily enrichment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담당 사육사들이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실시내역을 기록하고, 행동풍부화에 활용되는 도구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살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몰라도, 없다면 직접 만든다는 것이다. 행동풍부화에 대한 토론토 동물원의 관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피닉스 동물원 (미국)

 

건조하고 더운 곳이라 피닉스 동물원은 이런 기후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동물들과 피닉스의 토종 동물을 보유하고 있다. 동물의 2가지 주요 행동을 파악한 뒤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사회성 풍부화를 위해 동물들이 항상 바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매달 조금씩 변화를 준다. 환경풍부화를 위해 생태공원처럼 먹을 수 있는 식물로 전시장을 조성하고, 콘크리트 대신 흙과 모래와 풀로만 바닥을 구성한다. 모든 동물의 사육장에는 동물들이 관람객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세인트루이스 동물원(미국)

 

세인트루이스 동물원은 무료 입장으로 관람객들이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시민과 기업의 기부시스템이 잘 정립되어 있다. 사람에게 판매할 수는 없지만 먹는데 문제가 없는 음식이나 과일을 기업으로부터 제공 받아 행동풍부화에 사용하고, 동물원 내의 이용 시설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 넣음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사육사들이 행동풍부화에 필요한 재료들을 적어 위시트리에 걸어 놓으면, 시민들이 확인하고 동물들에게 선물하는 기부도 가능하다. 기본적인 환경조성에 그치지 않고,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려면 시민과 기업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아시아 대형동물원 중 최초로 AZA 인증 도전 나선 서울동물원과 에버랜드 

 

AZA(북미동물원수족관협회)는 약 40년에 걸쳐 인증 프로그램을 설계했고, 시대적 요구에 맞춰 인증 기준을 매년 업그레이드한다. 북미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동물원, 수족관 중에서 AZA 인증을 받은 곳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인증 기준과 심사 절차가 까다롭다는 뜻이다. 아시아에서는 현재까지 홍콩과 싱가포르의 아쿠아리움 3곳만 인증을 받았고, 서울동물원과 에버랜드 동물원이 인증에 도전장을 냈다. AZA의 인증 목적은 시설의 우수성, 안전성 확보 등을 통한 동물원 수준 향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물의 삶의 질 개선을 돕는 데 있다. 두 동물원의 인증 도전은 동물원의 수준 향상은 물론, 국내 전시동물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목표 - 동물 복지

 

우리는 동물들을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목적으로 길러지는 농장동물과 곁에서 애정을 주며 돌보는 반려동물이 있다. 또한 지구상 동물을 대표하는 야생동물이 있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과 함께 실험동물도 등장했다. 이 모든 동물들은 그 동안 법에 따라 저마다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아 왔다. 농장동물은 최소한의 고통 속에 목숨을 잃을 권리, 반려동물은 주인에게 매 맞지 않고 버려지지 않을 권리, 야생동물은 종의 존속과 번영을 누릴 권리, 실험동물은 인간을 위한 실험에 최대한 덜 희생될 권리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에 이용되었지만 이 분류에 속하지 못한 동물들이 있다. 농장동물처럼 우리에 갇혀 필요에 따라 증식되고, 반려동물처럼 감성적으로 바라봐지고, 실험동물처럼 냉철하게 탐구되기도 하지만 근본은 야생동물과 가깝다. 오늘도 동물원에서 수족관에서 또는 조그만 체험장에서 마주하는 전시동물이다.

 

시대에 따라 동물원의 모습도 진화했다. 예전에는 많은 동물을 보유하는 것이 자랑이었지만, 요즘은 수준 높은 전시와 교육, 그리고 멸종위기 종을 위한 보전활동을 하는지에 주목한다. 동물원들도 시대에 발맞춰 동물을 위해 환경을 개선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면 해당 종을 아예 전시하지 않거나 다른 종으로 바꿔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부적합한 사육환경에서 고통받는 전시동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동물원의 이상향을 고민하, 사육에 부적합한 동물은 동물원에서 과감히 포기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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