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의 인권 칼럼 3] 친밀한 폭력

가정 내 체벌 - '사랑의 매'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

매질을 한다. 허리띠를 풀어 내려친다.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연달아 때린다. 뺨을 때린다. 무릎을 꿇린다

. 긁힌 상처. 붉게 남은 자국. 욕설, 폭언, 위협.

 

누구도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자라며, 타인에 대한 폭력을 처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위의 이야기가 어느 동네에서나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믿을까? 체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주 가까이서 일어나지만, 누구도 큰 문제 삼지 않는, 부모에 의한 체벌

 

교사에 의한 체벌이 금지된 지금, 가정 내 체벌은 아직도 법적으로 처벌 받는 행위가 아니다. 친권자가 아이를 훈육하는 일엔 어떤 선이라도 그어져 있는 듯, 이웃도, 경찰도 쉽사리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제도의 문제만큼 인식의 문제도 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6년 국민 인권의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 가량은 아동, 청소년을 체벌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성인 간의 관계에서는 용인되지 않는 폭력이, 왜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허용될까? 

 

내가 초등학생 때, 시험에서 틀린 문제 개수만큼 회초리를 맞는다는 아이가 있었다. 멍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은 작은 손바닥이 있었다. 그때는 왜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최근에야 한 연구 결과를 보고 알게 됐다. 친구의 기분이 어땠을지. 2001년,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이 아이들에게 체벌의 경험이 어땠는지 질문하자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상처받음, 무서움, 속상함, 겁이 남, 외로움, 슬픔, 성남, 버려진 것 같음, 무시당함, 화남, 혐오스러움, 끔찍함, 창피함, 비참함, 충격받음.” 단 한 명의 아이도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랑의 매는 효과적인가? 우리는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한다. 체벌은 교육적으로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공격성 증가, 우울증, 행동 장애 등 아동에게 정서적 피해를 입힌다는 걸 수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체벌과 학대는 동떨어져 있으며그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처음부터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에게 해를 입힐 의도로 시작된 학대는 거의 없다대부분의 아동 학대는 훈육’ 차원에서 시작되며부모나 교사가 이성을 잃었을 때 체벌은 심각한 수준의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지난해 4다섯 살 준희는 사망한 지 8개월 만에 전북 군산의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시작은 30cm짜리 자였다

 

훈육 차원에서 자를 몇 대 내리치는 수준이었지만점차 폭행 강도는 세졌다자 다음엔 발이 나갔다친부는 검찰 조사에서 준희가 밥을 잘 먹지 않고 말을 듣지 않아 훈육’ 차원에서 그랬다고 밝혔다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현이는 거짓말 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책을 읽고 발표를 잘하지 못했다고, '훈육'을 가장한 무참한 폭력을 당했다. 더 이상의 아이들을 잃을 순 없다.

 

스웨덴에서도 1970년대 아이가 부모에게 체벌받다 사망한 몇몇 사건이 여론을 뒤흔들었고, 1979년엔 세계최초로 자녀 체벌금지법이 통과됐다. 스웨덴 정부는 텔레비전, 라디오, 광고, 포스터, 팸플릿을 동원해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고, 양육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부모들에게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도 빼놓지 않았다. 2010년대가 되자 자녀에게 체벌을 한 부모의 비율이 90%에서 10%로 줄었다. 이후 50개가 넘는 국가들이 스웨덴의 뒤를 따랐지만, 아직 그 목록에 한국은 없다. 

 

 

이 칼럼을 쓰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회초리 상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사랑해서 때린다’ ‘아이를 위해 때린다는 말이 가장 슬프다어쩌면 그 자신도 폭력을 내면화하며 자라왔을지 모르니까. 폭력은 대물림되고사회 전체로 퍼져 나간다이제는 그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때가 왔다.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은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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