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그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왕들처럼 '조'나 '종'이 붙지 않고 연산군과 같이 '군'이 붙었다. 그 이유는 광해군이 '폭군'이라 평가받기 때문이다. 조선 14대 왕 선조가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가버리고, 그의 아들 봉림대군은 맞서 싸우면서,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된다.이를 질투한 선조는 어린 아내를 얻어 영창대군을 낳게 되는데, 이후 선조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와 동시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던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광해군이다.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북인 세력도 함께 정권을 잡게 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광해군이 편파 정치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 당시가 붕당정치 사회였다는 것이다.광해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신하들이 붕당으로 나누어져정권이 오락가락하던 시대였고, 후에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내세우면서 잠시 혼란을 면했을 뿐이다.영조와 정조의 사후에 붕당정치는 다시 시작되었다.그때에는 붕당정치가 당연시되고 있었던 것이다.따라서 광해군은 편파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광해군은 즉위 후에, 후금과 명 사이에…
간송 전형필. 상당 수의 학생들은 물론이며, 어른들까지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전형필이 우리의 역사를 지켰다고 감히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6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필.1940년대 초기에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동북아시아에 이름이 알려진 대수 장가였다. 그는 위창 오세창 선생으로부터 '간송'이라는 호를 받았다. 아래는 위창 오세창 선생에 대한 설명이다. 【위창 오세창(1864~1953) 선생은 개화를 선도한 개화파이면서도 천도교인으로서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였다. 추사 김정희의 학맥을 적통으로 이어받았고 한학에서도 대학자였다. 위창은 간송과 같은 젊은이로부터 우리나라의 미래를 읽었고, 이 어려운 세태에 이런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과 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위창은 전형필에게 그 맑음에서 ‘물 흐를 간(澗)’ 자를, 그리고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뜻을 기리는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는 명문에서 ‘소나무 송(松)’을 써 간송이라는 호를 선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간송 전형필 [澗松 全鎣弼] - 한국의 미를 지킨 간송의 삶과 수집 과정 (테마로…
현대 사회에서는 '학생 인권'이 중요시되고 있다. 교사의 학생 폭행이 정당화되고, 학교에서도 이를 묵인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가능하고, 인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전국 16개시ㆍ도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아래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설명이다. 【 학교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전국 16개 시ㆍ도 교육청별로 제정ㆍ공포해 시행하는 조례다.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게 되면 각 학교장은 이에 따라 시행한다. 전국 16개 시ㆍ도 교육청 가운데 경기도(2010. 10. 5), 광주광역시(2011년 10월 5일)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시교육청이 집회의 자유 등을 포함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2012년 1월 26일 공포하였고, 그 뒤를 이어 전북도교육청이 2013년 7월 12일 전북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학생인권조례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는 좋지만, 그 한계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태다.학생인권조례의 취지는 매우 좋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자체를 부정하며 폐지…
보통 행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고 정치적인 것으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행정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행정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면, "법 아래에서 법의 규제를 받으면서 국가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국가의 행정, 즉 공행정을 뜻하는 것이고 넓게는 민간기업의 사행정 또한행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은 이외에도 여러가지 종류와 개념이 있지만, 모든 행정은 집단이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협동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행정을 국가의 고유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은 우리 사회 어디서나 존재하며 그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작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행정이라고 하면 "실질적 평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구제해줄 수도 있고,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막아줄 수도 있기 때문에 사회가 더욱 평등해지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행정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복잡하여 쓰지 못하였지만, 이 글은 읽고 행정에 관한…
열대 이동성 저기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어려운 말이라 생각이 들지만 매년 여름만 되면 일기예보에서 빠지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용어입니다. 그럼 혹시 태퐁, 사이클론, 허리케인은 들어보셨나요? 열대 이동성 저기압의 다른 이름이 바로 태풍, 사이클론, 허리케인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등 태평양에 인접한 북반구 국가들은 열대 이동성 저기압을 '태풍' 이라고 부릅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인도양에 인접한 국가들은 '사이클론' 이라고 부르고 미국, 멕시코에서는 '허리케인' 이라고 명칭합니다. 과거에는 호주 북동부 해안의 열대 이동성 저기압은 '월리월리' 라 이름 붙여졌지만 현재는 이 명칭이 사라지고 '사이클론'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열대 이동성 저기압이 한번 발생하면 풍수해를 비롯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행동요령을 사전에 숙지해 피해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에게 자연재해라 생각되는 열대 이동성 저기압은 적도에 과잉으로 축적된 에너지를 분산 시켜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적도에서 남는 에너지를 축적한 후…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특위 출범 ◦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시대에서 요구하는 역사관정립' 중심 활동 ◦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학생주도 행사, 체험활동체계적 지원 방안 모색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은 지난 31일, ‘경기도교육청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특별추진위원회’가 출범식을 갖고,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위원 호선을 통해 특추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특별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는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학생들의독립운동 정신 계승과 평화적역사관정립을 목표로 활동한다. 위원회는 역사연구가, 역사정립 실천가, 문화운동가를 비롯해 교원,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 학생 등 작가 조정래 씨를 포함해 15인으로 구성됐으며,2019년 12월까지 올바른 역사관 정립과 교육청의 기념사업을 중점적으로컨트롤타워역할을 수행한다. 역사를이해하는 '과거'와, 역사로부터 온 문제의 성찰과 극복을 중심으로 한 '현재', 평화통일의 역사를 열 '미래'라는시간적 연속성에 바탕을 둔 목표를 설정하여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FA 계약 시, 선수들은 보통 계약금과 연봉 즉, 보장금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FA 최대어 양의지도 이러한 이유로 NC로 이적하게 됐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와 2+1년 계약을 맺은 이용규는 이와 조금 다르다. 계약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기 위해서는 풀타임으로 활약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적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즉, 계약 기간과 금액이 불확실 한 것이다. 한화로 이적한 이후로 단 한 시즌도 전 경기 출장을 하지 못했고, 전성기 때의 기량을 되찾기 어려운 나이로 접어든 이용규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계약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용규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는 한화가 조건을 제안한 지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과연 이용규가 조건을 쉽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용규는 최근 몇 년간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결국 ‘유리몸’ 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용규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다. 자신의 몸이 유리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단도 애초에 2년 계약을 제시했고, 이용규가 2+1년 계약을 제안하자 여러 가지 조건을 걸게 된 것이다. 이용규는 신뢰 회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조선 초기 세종조에 조선의 화가 안견(安堅)이 세종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3일 만에 그린 산수화로서, 안견의 그림, 안평대군의 글씨, 그리고 집현전 문사들의 서예와 시, 문장이 세심히 어우러진 종합 미술품이다. 안견(安堅, ?~?)이 3일 만에 그림을 완성하자 안평대군이 그림의 제목과 시와 글을 쓰고 뒤이어 신숙주, 김종서, 박팽년 등 23명의 글이 썼다. 이 그림은 왼쪽의 현실공간과 오른쪽의 도원 세계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통일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견이 1447년(세종 29)에 그린 산수화로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다. 크기는 세로 38.7㎝, 가로 106.5㎝이고,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447년 4월 20일안견의 독실한 후원자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이용(李瑢)이 꿈 속에 도원(桃源)을 방문하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안평대군이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안견이 이 걸작을 단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여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의 설문조사 결과 83.7%가 호칭어 등 표준언어예절을 새롭게 정비할 필가 있다고 응답했다.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는데 반해 아내 동생은 그냥 '처남, 처제'라고 부른다. 이에 정부가 이런 가족 호칭이 차별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며 호칭 변고 권고안을 만드는 중이다. 시대가 달라지며 전통적 호칭을 어색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국립국어원도 전통 호칭 외에 배우자의 동생을 부르는 말로 남녀 구분 없이 '00 씨'나 '동생', 나이가 많을 땐 '님' 자를 붙여서 쓰는 호칭도 가능하도록 표준언어예절을 바꿀 계획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기해년(己亥年) 설 명절을 맞아 명절에 흔히 겪는 성차별 언어, 호칭 7건과 쓰지 말아야 할 속담, 관용 표현을 지난 1일 발표했다. 국어, 여성계 전문가들은 남성 쪽은 집 밖에서일하고, 여성 쪽은 집 안에서 일한다는 인식에서 비롯괸 집사람, 안사람, 바깥사람이라는 말을 지양하고 '배우자'로 부르자고 자문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제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의 시행과제 중 하나로 '성 비대칭적 가족호칭 개선'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국민 생각조사를 실시 중
2017년 영국 사전 출판사 콜린스가 '가짜 뉴스'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에 이어 2018년 역시 '대북 쌀지원으로 쌀값 폭등, 태극기 사라진 정상회담, 예맨 난민 신청자에게 월 138만원 지원, 평화협정 맺으면 주한미군 철수....' 와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가짜 뉴스가 유포되었다. 2017년과 다른 점은 유튜브다. 지난해에는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가 주축을 이뤘으나 올해는 유투브에서 시작이 되거나 확산된 뉴스가 많았다. 예를 들어 '노희찬 전 대표의 부인이 전용 운전기사를 뒀다'는대표적인 가짜뉴스의 시작은 조선일보였으나 확산된 것은 유투브 공간이다. 조선일보가 뒤늦게 정정보도를 했으나 유투브 정보가 섞이면서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줬다. 경제적 피해로 이어진 가짜뉴스도 있었다. 예를 들어 150조원의 금괴가 실린 배가 울릉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는 허위정보가 퍼져서 혼란이 일었다. 또 ,'미 재무부, 한국 시중은행 세컨더리 보이콧 결정'이라는 가짜뉴스는 주가에 영향을 줬다. 가짜 뉴스가 크게 떠오른 것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및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 그리고 2016년 대한민국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관련 집회다.…
[고양 = 류종백] '해처럼 늘 밝게'의 줄임말.'해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양시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이 지난 27일,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토당청소년수련관에서발대식에 준하는 '해오름식'과 이전 기수 활동을 마무리 짓는 '해내림식'행사를 통해 해늘 2.0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2.1의 새로운시작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2015년, '고양시 고등학교 학생회장단 연합'이라는 이름으로첫 활동을 시작한 해늘은지난해 8월전체적인 운영 시스템 리빌딩을 거쳐 '해늘 2.0'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해늘의 개편은 그 시도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대부분의 학교에서 7~8월에 학생회장단 선거를 진행한다는 점을 고려해 출범 시기를 정하였고 새로운 구성과 새로운 인원으로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 해늘 2.0의 회장으로 활동한 김원희 학생(행신고 3)과부회장 홍승우 학생(백신고 3),이태현 학생(일산컨벤션고 3)은 '항상 소외되는 인원 없이 늘 재미있게 일하는 것을 추구하면서도 효율적인 일처리를 중요시한 것.'을 해늘 2.0의 기본으로 여겼다며 출범 당시를 회상했다. 고양시 관내 고등학교의 학생회 임원들로 구성된 해늘은 '학생회 연합'이라는 이
한옥은 우리나라 전통가옥으로 각 지방이나 기후에 따라서 가옥의 형태나 구조가 달라진다. 남부지방의 한옥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에 해당하는 남부지방의 한옥은 부엌, 방, 대청이 일자형으로 구성되어 지붕의 모습이 'ㅡ' 자의 형태를 갖고있다. 이는 남부지역 특성상 무더운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끔 구성된 모습이다. 중부지방의 한옥 중부지방 한옥의 형태는 대부분이 'ㄱ' 자로 지어졌고 'ㅁ' 자의 형태의 가옥도 나타난다. 이는 북부지방과 남부지방의 중간에 위치해서이다. 개성중심의 지역에서는 부엌과 안방을 남쪽에 배치하여 해가 잘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서울의 경우는 부엌이 대부분 꺽인 곳으로 오게되어 동서쪽에 위치한다. 북부지방의 한옥 북부지방에 위치한 한옥의 경우에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 바람을 잘 차단하는 형태인 'ㅁ' 자의 형태로 지어졌다. 또한 방과 방을 직접 연결하여 마루나 복도가 없어 겨울철 추위를 막아준다.방과 부엌 사이에 있는 정주간은 부엌과의 사이에 벽이 없어 부엌일을 하거나 가족들의 사 또는 휴식 등 지금의 거실과 같은 역할을 했다. 정주간에는 온돌을 놓아 추위를 견뎠다.
의정부시 행복로 광장에 있는 이성계상은 의정부역에서 나온 사람들을 제일 처음 맞이해주는 의정부의 상징이다. 의정부에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이성계 동상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것이다. 이 동상을 보면서 이것이 왜 의정부에 세워져 있을까 궁금증을 가져본 적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장소 중, 이성계상은 왜 의정부에 세워져 있는 것일까? 의정부시와 이성계의 인연은 왕자의 난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자의난으로 졸지에 아들을 잃고 왕위마저 빼앗긴 태조는 자신의 고향인 함흥지방으로 가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함흥에서 돌아온 태조는 한양으로 가기 전, 이곳 의정부 호원동 전좌마을(현재 이 일대 수도권 1호선 전철역사를 회룡역이라 부르는데, '회룡이라는 말은 "용(이성계)이 돌아왔다"라는 의미이다)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태조를 맞이하기위해 정승들이 의정부로 왔고, 이들이 이곳에서 국정을 논의하였기에 이곳의 이름이 의정부가된 것이다. '의정부'는 의정부시의 명칭이자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으로 정승들이 국정을 논의하던 일종의 국무회의 같은 것이었다. 의정부라는 명칭은 그 당시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 "경기도 양주군 둔야면 의정부리"라는 부락명칭으로 등록되었다. 고구려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책 제목을 읽고, 좀처럼 두근두근 거리지 않는 내 인생에 회의가 들어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름이는 나이에 비해 빨리 늙는, 원인도 모르는 희귀병인 '조로증'을 앓는다. 기상, 식사, 진료, 취침의 반복되는 일상에도 무기력해 하지 않고 밝고 당찬 아름이를 보며 깨닫게 된 것이 많았다. 그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씩씩한 힘이며 따뜻한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열일곱 살에 미라와 대수는 진로나 성적에 관한 문제로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운명처럼 만나 아름이를 낳는다. 미라, 대수 그리고 아름이는 어린 부부를 향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 어마어마한 병원비용, 빚이라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함께 이겨 나간다. 겉은 빠르게 늙고 있지만, 속은 아직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아름이는 마음과 몸이 차이나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글도 쓰고 장씨 할아버지와 세상 이야기를 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이웃에게 희망을'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후원을 받게 되고 방송 이후에 만난 병을 앓고 있다는 '서하'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특별한 연애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비록 '서하'는 열일곱 소녀가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36세 아저씨였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밤이 지나 다시 아침이 되면 또다시 해가 뜨기 마련이다. 지난 2013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축구 대표팀의 두 태양, 구자철(FC 아우크스부르크)과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해(2008년)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첫 발을 내디딘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그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이번 류축르에서는 두 선수가 걸어온 길과 너무나도 진하게 남은 그들의 발자국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THANK YOU 2008 - 2019 두 별이 진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두 태양이 진다. 2010년 대 한국 축구를 풍미했던 두 태양이 진다.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공교롭게도 둘은 2008년에 혜성같이 등장해 10여 년이라는 세월을 불태우고 같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두 선수 모두 K리그가 낳은 산물이라는 점에서 류축르의 마음은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구자철은 2007년, 제주 유나이티드의 감귤색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기성용은 2006년 FC서울의 로쏘네리 유니폼을 입었다. 비록 경기에 뛰기 시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