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진의 스포츠 칼럼 13] '아르센 후?' 명장 벵거, 아스널에서의 22년을 돌아보다

아스날 부임부터 FA컵까지...지난 22년으로 보는 벵거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은 많은 순간들이 크게 변했다. 영원히 리버풀에 있을 것 같았던 제라드는 어느새 한 팀의 감독이 되었으며, 브라질의 어린 소년은 메시와 겨룰 정도의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어린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 박지성과 기성용은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독 축구 팬들을 아쉽게한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22년 동안 아스날을 지휘하며,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아스날의 역사적 순간에 늘 함께했던 아르센 벵거의 이별이다.

비록 지금은 과거 아스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아스날이 영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지금의 벵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르센 후? (Arsene Who?)' 벵거와 아스날의 운명적 만남
 
1996년 9월 30일. 벵거가 아스날에 정식 부임한 날이다. 하지만 사실 벵거는 그로부터 1년 전인 1995년부터 당시 아스날을 지휘했던 조지 그레엄을 이을 아스날 차기 감독으로 언급되었다. 바로 데이비드 딘 아스날 부회장이 그를 적극 추천한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 한 번도 부임한 적이 없는 아스날의 이사진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그리 반갑진 못했다.

하지만 결국 벵거는 데이비드 딘과의 인연으로 인해 아스날에 부임하게 되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해서 벵거와 아스날의 인연은 부임 7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딘 부회장은 당시 AS 모나코의 감독이었던 벵거를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만났고,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반해 그를 아스날로 데려오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부임 당시 벵거는 차기 감독으로 강력하게 언급되었던 요한 크루이프에 비해서는 비교 될 수 없을 정도로 무명 감독이었기 때문에 현지 팬들 역시 그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부임 직후 현지 언론에서 벵거를 향해 Arsene Who?(아르센 후?)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일화는 현재까지도 축구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축구 팬들은 이 남자가 아스날의 역사를 쓸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단 관리부터 시작해 모든걸 바꾼 외국인 감독
 
21세기 축구계에서 축구선수가 술을 먹는다면 팬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대부분이 선수 생명에 있어서 치명적이라고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벵거가 아스날에 부임하기 전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에서는, 선수의 음주가 그렇게 치명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 선수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꾼 사람이 바로 갓부임한 아스날 첫 외국인 감독 벵거였다. 심지어 그는 선수들이 간식을 먹는 것 까지 규제하였으며, 현재 우리가 보는 체계적인 식단 관리와 다양한 스트레칭 시스템을 도입하였다고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구단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전적인 훈련 방식에 변화를 주었고, 지금의 축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벵거는 EPL에 새로운 개혁을 일으킨 명장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맨유의 독주를 막은 클럽, 그리고 첫 풀(full) 시즌의 더블   


1997/98 시즌은 벵거와 아스날에게 영원히 남을 역사적인 한 해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EPL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제압하고, 아스날 역사상 두 번째로 더블을 기록한 것이다. 이때부터 벵거와 퍼거슨의 치열한 대결이 시작되었다.

벵거는 부임 첫 풀 시즌만에 리그와 FA컵을 모두 우승하며 무모하게 무명 감독을 선택한 이사진들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 증명해보였다. 또한 그의 자질을 의심했던 팬들을 모두 조용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영원한 레전드 앙리의 입단과 완벽한 두 번째 더블
 
1999-2000 시즌, 벵거는 아스날의 130년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선수를 영입했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앙리. 바로 전 시즌 떠나보낸 니콜라스 아넬카의 대체자라는 평을 받았지만 당시 벵거는 이 두 프랑스인 스트라이커를 함께 기용할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앙리를 통해, 아스날과 벵거는 2000년대 초반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다.

2001-2002 시즌, 아스날은 아넬카를 포함한 주축 선수들을 떠나보내면서 셀링클럽의 이미지로 굳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벵거에게는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즌이었고, 선수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아스날은 앙리, 실뱅 윌토르, 베르캄프와 피레스, 융베리 등의 주축 선수들의 활약에 힘 입어 아스날 역사상 세 번째 더블을 기록하게 되며 모두의 논란을 잠재웠다.

그 당시 아스날은 벵거가 감독상, 앙리가 득점왕, 융베리와 피레스가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면서  EPL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EPL 역사상 최초의 무패우승


2003-2004 시즌은 전 세게 축구 팬들에게 있어서 충격적이고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시즌이였다. 2001/02 시즌 더블을 기록하며 좋은 시작을 알렸던 아스날이 그 다음해인 2002/03 시즌에도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잉글랜드 최고의 팀으로 자리매김 한 이후, 연이어 EPL 역사상 최초 우승까지 기록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시즌에는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는데, 그들의 위협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정상에 오른 것이다. 특히 아스날 입단 전에는 무명 선수였던 콜로 투레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레만의 리그 전 경기 출전, 앙리의 꾸준한 활약 등으로 27승 12무로 리그 무패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스날의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랐던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라니에리가 이끌던 첼시에게 아쉬운 패배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리그로 평가되었던 세리에A의 인터 밀란을 조별 리그에서 5-1로 꺾는 등 아스날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클럽임을 보여주었다.

현재까지도 그들의 EPL 무패우승 기록은 아무도 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년 연속 FA컵 우승, 다시 찾아온 위기
 
2004-2005 시즌 이후 오랫동안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면서 긴 슬럼프에 빠졌던 벵거의 아스날은 2013/14 시즌과 2014/15 시즌, 각각 메수트 외질과 알렉시스 산체스를 영입하여 FA컵 강자답게 2년 연속으로 FA컵 2연패를 달성하며 여전히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임을 증명해보였다.

하지만 지난 2016-2017 시즌, 벵거의 아스날 부임 이후 처음으로, 리버풀에게 승점 1점을 뒤지면서 EPL 4위권을 벗어나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벵거는 팀이 어려운 순간에도 늘 리그 4위 내의 순위를 유지했기에 팬들의 신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후 아스날은 논란속에서 벵거와의 재계약을 발표했지만 그 후에도 벵거의 재계약은 아스날 팬들에게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22년만의 이별' 결국 새드엔딩으로 끝난 벵거와 아스날
 
7번의 FA컵 우승, 7번의 커뮤니티 실드 우승, 3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무패 우승을 기록한 명장 벵거에게도 세월은 야속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벵거는 22년만에 아스날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많은 팬들은 리그에서 부진하고 있는 그가, 유로파 리그에서나마 우승을 차지함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랬지만, 결국 아스날은 준결승에서 만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배를 내주며 슬픈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스날 팬들 역시 그의 사임을 바라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그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사임을 발표하게되니 조금은 아쉬운 반응이다.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축구팬들에게도 다음 시즌부터 벵거의 아스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한동안 어색할 것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70세(한국나이). 수 많은 세월동안 아스날과 함께한 그는, 비록 그 끝이 아름답진 못했지만 아스날의 영원한 명장으로 남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많은 감독들이 아스날의 차기 감독후보로 언급되고 있지만, 벵거의 22년을 따라가기엔 한 없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팬들은 벵거의 지난 22년보다 다음 시즌 아스날을 이끌 감독이 누구일지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벵거는 아스날의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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