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의 철학칼럼 13] 미투, 진정한 한국 전통으로의 회귀

2018년은 가히 미투의 해라고 부를만 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운동인 미투는 201710월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SNS#MeToo를 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가 JTBC뉴스룸에 출연하여 검찰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고발하며 시작되었고, 문화계와 정계로 퍼져 나가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 이윤택, 배우 조민기, 배우 조재현, 정계인사 안희정, 정봉주 등이 지목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 운동 기이하게 변질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점차 남녀 대결로 몰리는 것이다. 이 두 운동이 여성의 인권만이 아닌 양성 모두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90년생 김지훈(<82년생 김지영>을 비꼼)’이 등장하고, 여성이 발화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는 미투 운동에서조차 맨스플레인(man+explain, 남자들이 자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여성들은 한남(한국남자)’ ‘남혐(남자혐오)’등의 단어를 쓰며 대한민국의 남자 전체를-‘여자를 얕잡아 보는 것은 대한민국 남자 모두의 특성이다라는 식으로-깎아내리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정서 때문에 여성에게는 부당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일까? 여기에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한반도의 여성 인권 역사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한반도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삼국시대 말기에 남자의 군역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이 생산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특히 신라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보다는 계급(골품제)의 차이를 더 중요시하여 모계 핏줄이 신분과 왕위 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여왕이 존재했으며 초기 화랑의 우두머리는 여성이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남녀 차별이 거의 없는 사회로 호적은 출생순이었고, 제사는 모든 자녀가 번갈아가며 시행했으며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상속을 받았다. 이러한 여성의 지위는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으나, 조선 후기에 엄격한 성리학이 도입되며 점차 낮아지게 되었다. 이후 개화기를 거치며 여성 운동이 활성화되었지만 일제 강점으로 인해 움직임이 꺾이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해보고자 하는 것은 일제 강점이다.

 

위계적인 일본 문화가 침투한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

 

일제의 문화는 매우 수직적이다.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생은 당대의 여성 엘리트로 양반과 동등한 선상에서 시조를 주고받으며 문화 활동을 즐겼던 것과 달리 일본의 게이샤는 일본 남성들에게 유흥거리였을 뿐이다

 

이러한 일제의 문화는 일제 강점 당시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생활방식, 언어 등 사회의 많은 면을 일본처럼 바꿔놓으려 했던 일제의 정책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어 2018년인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준비, 출발요이, 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은재 국회의원이 견제를 겐세이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겠다. 수직적인 일제의 문화는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문화에도 침투하였다.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을 사축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상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일본의 기업 문화는 군대식 경영이라고 책 <후지 은행원의 기록>에 언급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 때 우리는 군대식 경영을 답습하여 기업을 꾸렸다. 이때부터 상사와 사원의 경계가 명확한 한국 기업의 문화가 시작되어 사원인 여성이 거부할 수 없는 상사의 성폭력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수평적이었던 한국 문화

 

기존의 한국 문화는 수평적이었다. 그것은 이황과 기대승의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사단 칠정에 관해 당대 최고의 유학자 이황과 한참 어린 후배인 기대승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몇 년을 논쟁을 펼쳤다. 이황이 기대승의 도전을 받아주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욱 대단한 것은 이황이 황이 고개를 숙입니다라고 기대승에게 말한 것이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사장이 대리에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선 상상조차 힘든 일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존재하였다.

 

 

 

미투, 진정한 한국 문화로의 회귀

 

위계질서는 토착문화가 아니었다. 가부장적인 성향이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현재 여성의 인권이 우리나라보다는 높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 성향이 심화되어 우리 문화에 침투한 것은 일제 강점 때였다. 여자를 남자의 재산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토착 문화가 아니다. 이 관점에 기대어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을 바라본다면, 남녀의 대결이 아닌 진정한 한국 문화로의 회귀가 바람직할 것이다.

 

 

 

사회가 변화하려 한다. 그 변화 속에서의 잡음은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했던 것이지만 자칫 잡음이 진짜 목소리를 잡아먹을 위험이 있어 그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이 변혁 속에서 우리는 대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릇된 일제 문화에서 벗어나려 하는 알에서 깨어나려 하는 움직임으로 바라보며 남성과 여성의 인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미투 운동은 진정한 한국 문화로의 회귀다.

 

칼럼 소개 :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논제에 수많은 가치와 관점을 담을 수 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학문이며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한 학문입니다. 칼럼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철학으로 한 발짝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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