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의 철학칼럼 12] 마키아벨리는 나쁘지 않다

오늘날의 마키아벨리 재해석

여우와 사자의 융합. 군주는 여우인가 사자인가에서 벗어나 둘 다여야 한다는 주장을 던진 것은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던 사회에서의 권력 투쟁과 각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하여 <군주론>을 펴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대해 과거 많은 비판이 있어왔지만 요즈음은 그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어떤 이유에서 그의 이론이 현대에서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재평가가 시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마키아벨리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비판은 제대로 된 군주라면 여우처럼 스스로를 감추고 가면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정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의 비윤리적인 주장이 그 비판을 가중시켰다. 그의 주장이 비윤리적인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마치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조카를 왕위에서 쫓아내고 대신 왕위를 차지한 세조처럼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조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목적과 수단은 별개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prudence를 요구한다. 진중한 숙고를 뜻하는 prudence는 군주가 비윤리적인 수단을 쓸 것인가를 결정할 때 필요하다. 비윤리적인 수단을 쓰는 것이 현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인가를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는 실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폭력적·불법적 수단은 옳다고 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세조의 예를 살펴보자면, 얼마든지 단종의 신하로서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세조에게는 prudence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 세조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이 현대 사회에서 유용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에 앞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펴낸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많은 도시국가들이 분열해 있고 주도적 권력이 피렌체가에서 피렌체가로 바뀌던 상황이었다.

 

피렌체가에 몸담고 있던 마키아벨리로서는 큰 위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외교관으로 재임했을 당시 겪었던 것을 토대로 <군주론>을 저술하여-공직으로의 복귀를 위해-피렌체가에 바친다.

 

그는 당대에서 성공한 권력 투쟁과 실패한 것을 분석하여 군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서술하였으며 그것은 Fortuna와 함께 Virtu, 개인의 역량이자 덕이었다. 특히, Virtu라는 것은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인물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책에서 어떤 사람이 '군주로서의 합당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답할 때 항상 Virtu의 존재 여부를 따졌다.

 

현대사회가 다시 마키아벨리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당시와 현대 사회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보자면 분열한 도시 국가가 큰 국가 단위로 확대된 것이며 국제 사회에는 애석하게도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독일과 같은 나라들이 국제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은 이들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국제기구인 국제연합에마저 힘의 논리가 안보리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구평화론>에 나타난 칸트의 이상주의적 주장이 크게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다. 국제법과 국제기구만으로는 국제사회를 규율할 수 없다. 또 사자만을 강조하는 이상주의적 주장의 실패는 과거 중국에서 이미 나타났는데, 군주는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공자는 등용되어 쓰이지 못했다

 

따라서 국가의 지도자들은-오늘날은 대통령이나 총리의 개념이다-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교묘한 술법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이미 국제사회는 그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업에게서는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의 추구가 더욱 잘 드러난다.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의 가장 큰 목적은 이윤창출이다. 그들은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움직인다. 전략적인 광고와 판매 기술 등이 그것이 된다. 게다가 그들은 prudence를 반드시 갖출 필요가 있다

 

만약 이윤창출을 위한 행위가 지나쳐서 불법을 저지르거나 필요하지 않은 비윤리적인 수단을 쓰게 된다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반감을 사서 이윤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이미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이 퀜틴스키너와 같은 학자들이 다시 마키아벨리에 주목한 이유이다. 용맹만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는 실패하게 된다. 주변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나 맹자처럼 여우를 버린 지도자상은 실패했다. 말 그대로 이상적 이론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현실을 보았을 때 쓰이고 있으며, 쓰일 주장은 마키아벨리다.

 

 

 

 

덧붙이는 사설: 마키아벨리를 다룬 책 중 퀜틴스키너의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분량이 크게 길지도 않고 마키아벨리에 대하여 재미있게 재해석한 책이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칼럼 소개 :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논제에 수많은 가치와 관점을 담을 수 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학문이며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한 학문입니다. 칼럼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철학으로 한 발짝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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