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칼럼

[류호진의 스포츠칼럼 10] 8년 전의 감동이 아직도... '손세이셔널' 손흥민의 8년

함부르크부터 토트넘까지... '리그 7호골' 전성기 달리는 손흥민



지난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 중 상대 골키퍼를 농락하는 멋진 골이 나왔다. 이 골의 주인공은 FC 쾰른을 상대로 한 함부르크 SV의 득점으로, 팬들을 그 어느 때보다 열광케 했으며, 같은날 구단 홈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이 골은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팬들의 마음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바로 이 득점의 주인공이 18세의 한국인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손흥민. 이 날은 함부르크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가 탄생한 날이며, 차범근과 박지성을 이을 한국의 또 다른 축구스타가 탄생한 날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메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이 소년은 어느덧 8년이 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에서 활동하는 한 명문구단의 중심 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함부르크부터 시작하여 레버쿠젠, 그리고 이제는 토트넘 훗스퍼와 대한민국의 7번으로 활약하는 손흥민. 지난 2010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힘들었지만 엄청난 기록을 세운 그의 여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2010년, 한국 축구 천재의 탄생 

앞서도 언급되었듯, 손흥민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약 8년 전인, 지난 2010년이었다. 프리 시즌에서는 첼시를 상대로 득점을 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던 그였으며, 엄청난 기대 속에서 분데스리가의 첫 시즌을 14경기 3득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마쳤다.


이는 숫자만 보았을 때, 공격수로서 좋은 성적이 아니라고 판단 될 수 있는데, 당시 18세 소년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함부르크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유망주가 탄생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데뷔전과 함부르크 MVP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수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재계약까지 성공하면서 손흥민의 활약은 날이 갈수록 돋보이게 되었다. 두 번째 해인 2011-2012시즌에는 40번이었던 등 번호마저 바뀌면서 팀 내의 위상을 증명해주었으며, 프리시즌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또 한 번 독일 축구계의 엄청난 유망주로 떠오르게 되었다.

두 번째 시즌의 성적은 27경기 5득점 1도움. 이 역시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다. 하지만 진짜 활약은 다음 해인 2012-2013 시즌에 시작된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손흥민 .


최고의 해, 그리고 손세이셔널

손세이셔널을 기억하는가. 선풍적인 이라는 뜻의 영어 Sensational을 해외언론에서 살짝 고쳐서 Sonsational로 바꾼 것이다. 2012-2013 시즌은 말 그대로 손흥민에게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다시 등번호를 40번을 고친 후. 리그 33경기 12골 2도움으로 엄청난 시즌을 보낸 그는 손세이셔널 이라는 단어가 팬들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로 팬들의 뜨거운 인기를 받았다.

이후 토트넘 훗스퍼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엘 레버쿠젠 등 많은 명문 클럽들이 이 어린 소년에게 관심을 가졌고, 과연 그의 행선지는 어디가 될 것인지 많은 이들이 숨 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바이엘 레버쿠젠의 7번 손흥민


바이엘 레버쿠젠의 '7번' 손흥민
지난 2013년은 함부르크 팬들에게 있어 가장 가슴 아픈 해였다. 바로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한국인 손흥민이 구단 최다 이적료를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내의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떠난 것이다.


반면, 도르트문트와의 치열한 영입전에서 승리한 레버쿠젠의 팬들은 열광하였는데, 과거 70~8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인 최고 선수 차범근의 소속 클럽이 바로 레버쿠젠이라는 사실에 더더욱 손흥민의 활약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이스를 상징하는 7번이라는 등 번호를 받으며 엄청난 관심과 함께 시작된 첫 번째 시즌의 성적은 31경기 10득점 4도움. 비록 팀의 부진과 함께 득점면에서 기복을 보이기도 했지만 성공적인 한 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차범근에 이어 레버쿠젠 소속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는 등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4위 자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에서의 득점으로 챔피언스 리그 티켓까지 얻어내는 성과를 보여주었으며, 친정팀 함부르크를 상대로 통산 첫 헤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기억에 남을 레버쿠젠에서의 첫 시즌을 보냈다.




점점 더 성장하는 손흥민 

두 번째 시즌 역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만들어낸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본선까지 진출시켰으며, UEFA 기술 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세트피스 득점 1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독일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리그에서도 역시 베스트 11에 선정 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시즌 후반에는 폼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리그에서는 11득점 2도움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5득점 1도움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22세에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해주었다.

이어진 새 시즌에서는 토트넘이 손흥민을 주시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모두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토트넘의 7번 손흥민 .


아시아인 최다 이적료, 그리고 최악의 시즌

지난 5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토트넘의 엄청난 중거리 득점이 나왔다. 그리고 득점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손흥민이었다.

지난 2015-2016시즌, 언론들의 수많은 보도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손흥민이 아시안인 최다 이적료인 추정액 한화 약 400억원의 이적료로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며 토트넘 훗스퍼의 7번으로 입단하게 된 것이다.

토트넘은 과거 이영표가 몸 담았으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있는 EPL 소속의 명문 구단이었기에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소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는 데뷔 2주만에 환상적인 득점으로 EPL 주간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앞으로 팀을 이끌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하였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는 다르게 토트넘에서의 첫 시즌은 손흥민의 커리어 중 가장 최악의 시즌으로 남게 되었다. 리그 28경기 4득점 1도움. 토트넘 역대 최악의 이적, 또는 최악의 7번이라는 등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분데스리가 복귀설까지 나올 정도로 EPL에서의 가혹한 첫 시즌을 보낸 이후, 몇 년이 지나면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는 이영표 위원의 말대로, 그의 진가는 그다음 해인 두 번째 시즌 만에 드러나게 되었다.   

아시아인으로서 최초로 EPL 이달의 선수상을 한 시즌 동안 2회 수상, 아시아인 EPL 최다득점인 14득점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것이다.

심지어는 FA컵에서 5경기 동안 6득점 1도움을 기록하면서 득점 선두에 이름을 올렸으며, 강팀을 상대로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이적이 최악의 영입이 아닌 최고의 영입이었음을 증명해주었다.

                           

EPL 공식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한국인 손흥민 .


힘들었던 출발과 2018년 현재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비난과 고생 끝에 2018년 현재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되었다. 이제는 더이상의 부진도, 기복도 보여주지 않는 그이다.

2017-2018시즌 현재까지의 리그 기록은 7득점 3도움. 어쩌면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그는 이제 더이상 과거의 부족함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에이스로 성장하였다.

더 나아가서, 어느덧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또 주축으로 성장한 그가 과연 다가오는 2018 러시안 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국민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어느 시기보다도 최악의 시기라는 평을 받고있는 대한민국. 어느덧 25세의 에이스로 성장하게 된 그는 이제 더이상 유망주가 아닌 팀의 핵심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이 된 손흥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손흥민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되 절대로 그 비중이 그에게만 기울어지면 안 될 것이다.

독일, 스웨덴 그리고 멕시코. 가장 좋지 않은 시기에 최고의 상대들을 마주하게 된 우리나라. 과연 손흥민을 중심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그 결과는 끝까지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조기 탈락을 확신하는 분위기지만 작은 희망과 함께 끝까지 그들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