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난 후, 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다

광릉 국립 수목원서 태풍의 흔적 유지하며 생태 관찰

  

201092, 태풍 곤파스가 한국을 덮쳤다. 순간풍속 19~25m/s의 곤파스는 거리의 간판을 위태롭게 흔들었고 나무는 꺾였다. 특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아예 간판이 날아가거나 기왓장이 바람에 날아가 인명피해도 발생했으며 비가 오지 않는 상태에서 강풍이 불어 벼의 수분이 모두 날아가는 백수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2010916일 서산을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곤파스가 한국을 휩쓸고 있을 때, 산림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릉 국립 수목원의 고목들은 뿌리 채 뽑히기도 했다. 태풍이 지난 후 대부분의 지역은 피해를 입은 곳을 수습하고 쓰러진 나무는 즉시 치웠다. 하지만 국립수목원은 다른 선택을 했다. 뽑힌 나무를 그대로 두고 생태적인 변화를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곤파스가 상륙한 후 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넓은 뿌리와 깊은 뿌리


국립수목원 정문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생태관찰로가 나온다. 생태관찰로는 숲을 한가운데로 가로지를 수 있도록 조성된 좁은 데코길이다. 데코길을 따라 가다보면 곤파스 피해 지역이 보존되어 있다. 피해지역에 들어서면 큰 바위가 관람객을 맞는다. 하지만 이 바위는 실제 바위가 아니라 뽑힌 나무의 뿌리와 흙이 엉겨 붙은 것이다. 태풍에 뽑힌 나무들은 대부분 넓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무 뿌리의 형태는 나무 종류에 따라서 형태가 독특하게 나타나지만 자라는 땅의 환경에 따라서도 뿌리의 형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물빠짐이 잘되고 건조한 땅에서는 직근이 발달해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가는데 이를 통해 땅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수분을 찾아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습기가 많거나 물빠짐이 안되는 곳에서는 수분을 찾아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직근 대신 측근이 발달해 대부분의 뿌리가 옆으로 퍼지게 된다. 측근이 발달한 나무는 아무리 오래된 고목일지라도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풍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피해 지역의 입구에서 볼 수 있었던 넓은 바위도 측근이 발달한 나무가 쓰러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태풍이 불었던 그때


꺾이고 뽑힌 나무들은 태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버텼던 7년 전 숲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나무들이 단순히 바람을 맞았기 때문에 쓰러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태풍 피해지는 바람을 맞는 지역보다는 풍속이 빨라지면서 통과하는 긴 능선 및 협곡부의 경사면에서 주로 나타난다. 국립 수목원에서 곤파스 피해지역 또한 경사면을 등지고 있었다. 같은 바람과 비를 맞았어도 그 피해 형태는 다르게 나타났다. 뿌리 채 뽑혀 넘어진 도복형, 바람의 방향에 따라 기울어진 휨형, 꺾어진 형태인 파손형으로 나뉜다. 국립수목원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도복형이었다. 도복형은 넘어지면서 다른 나무들에 부딪혔고 다른 나무둘은 자연스럽게 파손형 풍도목이 되었다. 이때의 풍도목은 태풍이나 강풍에 의해 뿌리가 뽑히거나 몸체가 파괴된 나무를 말한다. 하지만 국립수목원에서 파손형 나무는 찾기 어려웠는데, 7년이라는 세월 동안 꺾인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새롭게 자랐기 때문이다. 피해 장소에서는 도복형 풍도목만이 태풍을 증언하고 있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복형 풍도목은 지금 쓰러져 있는 자리에서 서서히 분해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버섯이 쓰러진 나무의 줄기에서 자라나고 있었으며 오래돼 썩은 부분은 이끼가 덮고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겉모습만 조금 바뀌었을 뿐, 그 크기와 모양은 변함이 없었다. 태풍은 순식간에 나무를 뿌리 채 뽑히게 하지만 흔적의 분해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 나무가 뽑혀 죽으면 미생물, 곤충, 새 등의 서식처와 먹거리가 되면서 나무는 서서히 분해된다. 분해되는 속도는 나무의 종류와 크기, 주변 환경, 생물 다양성에 따라 다르다. 습도가 높고 미생물이 잘 번식하는 곳이라면 분해가 빠른 반면, 나무가 크고 건조한 곳에서는 마르기만 할 뿐 분해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대체적으로 나무가 분해되기 위해서는 100년이 조금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립수목원의 도복형 풍도목 또한 사라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무는 서서히 분해되며 태풍 곤파스의 위력을 조용히 알릴 것이다.

 

태풍 곤파스가 나무를 흔든 후, 7년이 지났다. 휨형 풍도목과 파손형 풍도목은 모두 태풍의 흔적을 회복하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었지만 도복형 풍도목만은 여전히 거대한 뿌리를 바위처럼 드러낸 채 태풍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숲 속 생태는 자연의 움직임을 시간의 흐름 속에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규모가 거대해지고 있는 자연재해 또한 생태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는 침묵의 나무지만 그 무엇보다 현재 지구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광릉 국립 수목원은 사전예약한 사람에 한하여 화~금요일에 15천명, 토요일 및 개원일과 겹친 공휴일에는 13천명까지 입장 가능하며 일요일, 월요일, 신정, 설날 및 추석 연휴에는 사전예약이 불가능하다.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태풍 곤파스'

-국립 수목원 홈페이지

 

사진출처

-포토그래퍼, 소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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