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환의 의료칼럼 9] 법의학, 죽은 자의 증언

죽은 자의 인권을 지키는 길

최근 1997년에 일어난 서울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살해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 유족들이 수사가 지연됨에 따라 고통을 겪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10억원대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처음 법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20년 만에 진범을 가리게 된 이 사건 뉴스를 접하고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보게 되면서부터이다. 분명히 죽인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범인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과정을 보며 그 억울한 죽음의 열쇠는 법의학자라는 걸 그때 깨닫게 되었다.

 

도서관에 가서 법의학과 관련된 책들을 찾다가 법의학 진실을 부검하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의 뒷면에 의사는 산자를 구하고 법의학자는 죽은 자를 구한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고 40년 관록의 일본 법의학자가 직접 쓴 책이라 일본의 법의학 체계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원래 문과계열 과목을 좋아한 학생이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의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법의학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진로방향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을 구하는 의사도 있다는 점에 끌려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책은 살인사건의 진상해부, DNA형 검사진단, 대재난 현장증언, 의료사고 현장감정의 내용으로 총 4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주제는 저자가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서술되어 법의학자가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알게 해주어 흥미로웠다.

 

법정은 제시된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릴 뿐,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실을 밝히는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법의학이다. 법의학하면 우리는 부검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의문의 죽음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죽은 사람의 몸을 부검하여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법의학자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법의학자의 역할은 더 광범위하다.

 

책에서 정리된 법의학자가 주로 하는 일은 크게 사람이 살해되거나 사망사고가 있을 때, 그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부검과 의료사고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는 일, 그밖에 혈액형 검사나 DNA형 검사로 친자감정을 하거나 사고현장에서 죽은 자의 신원을 밝히는 일 등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명피해가 많은 대형사고 현장에서 유족들에게 흩어진 시신을 찾아주는 힘겨운 역할까지 법의학자가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에도 법의학자의 역할이 한몫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범죄현장의 사건사고 해결과 처리 방법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크게 변화되어 DNA형 검사를 하거나 시신에 남아 있는 손상을 검안하고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등 법의학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사인을 밝히고 신원을 명확히 확인한다.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나 불의의 사고가 현재도 미래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한 우리의 삶에서 법의학은 없어서는 안되는 분야일 것이다.

 

요즈음 어금니 아빠사건이나 10대 초등생 살인사건 등 갈수록 지능적이고 엽기적인 범죄가 일어나고 있어 치밀하고 빈틈없는 과학적 방법과 냉철하고 명확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유능한 법의학자가 꼭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법의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한다. 의과대학의 법의학 교육 외면과 전공자 부족, 그리고 법의관의 열악한 처우 등으로 법의학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부검 결과 검안서 사인 판단 오류 비율이 무려 55%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전문 인력 양성의 문제가 앞으로도 지속될 경우, 실력 있는 전문적 인재의 부재로 인해 타살이 자살이나 병사로 둔갑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사회적인 큰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여 유능한 전문 인재가 사명감을 가지고 법의학을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할 것이다.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의학자를 꿈꾸는 청심국제중 의학 칼럼니스트 신승환입니다. 현재 새롭게 관심을 갖게된 분야는 인간의 뇌질환과 인공지능 및 뇌공학이고 앞으로 이룰 꿈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과  희귀병치료를 목표로한 연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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