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의 무비칼럼 9] <덩케르크> 사면초가의 전장 속으로 빠져들다

육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그리고 공중에서의 한 시간

"고3 생활에 찌든 나머지 영화글쟁이라는 본분을 잊고 살았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조영호 올림-

 

덩케르크는 <메멘토>, <인셉션>, <다크나이트>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퍼 놀란이 연출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로 올해 초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던 작품이다. 필자가 '2017년 개봉 기대작'이라는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이제 놀란 감독은 '믿고 보는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꿈을 조작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였던 <인셉션>부터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인터스텔라>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작품마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거기에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본인만의 철학까지 담겨 사실적인 장면이 줄 수 있는 쾌감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물론 놀란의

영화가 다소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영화를 보고나서 함께 곱씹어보고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이번 <덩케르크> 역시 놀란의 영화가 가진 장점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1. 육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공중에서의 한 시간

영화가 처음 시작되고 나면 '육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공중에서의 한시간'이라는 타이틀을

보여준다. <덩케르크>를 어려워하시는 대부분의 관람객 분들은 아마 이 지점에서 당황하셨을텐데 이는 전체 영화가 극 중 벌어지는 이야기를 어떠한 포맷으로 이끌어나갈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덩케르크 해안가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의 모습은 일주일 간의 이야기이며,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하는 한 어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시간 동안의 이야기이고, 독일군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3명의 파일럿들의 모습은 한시간 동안의 모습이다. 그리고 극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가지던 육.해.공의 스토리는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놀란 감독이 선사하는

'곱씹어 보는 재미'와 더불어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 탈출해야하는 사람들, 그들을 탈출 시켜야하는 사람들

덩케르크는 다른 전쟁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지만 어찌됐건 전쟁 영화이다. 그리고 전쟁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건 바로 '생존을 위한 사투'일 것이다. <덩케르크>는 100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장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투기의 폭격에 다리가 파괴되고, 어뢰 공격에 구조선이 박살나고, 병사들이 숨어있는 어선에 독일군들이 총을 쏘더라도 그들의 목적은 항상 같다.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 다른 목적은 없다. 전쟁 속에서 생긴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서 이내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아군에게 총을 겨누기까지 하지만 그것도 결국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한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덩케르크 해안으로 향하는 어선들, 그리고 수시로 남은 연료를 체크하며 마지막

적 전투기까지 격추시키려는 공군의 모습 역시 '가능한 한 많은 병사를 살려야한다'는 그들의 목적 하나에

따른 행동임이 잘 드러난다.

 

3. '사람'이 아닌 '사건'에 주목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100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잘 보고 나왔는데 우리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심지어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영화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들의 목적 하나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들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한다. 인물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영화는 '상황'을 묘사하는데 좀 더

집중한다. 그러한 일환으로 <덩케르크>에는 정작 적군인 독일군의 모습은 단 한번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독일군이 등장했다면 영화 속에 선악의 구도가 생겨 살아서 나가야하는 연합군의 모습에 집중하지

못할 여력이 조금이라도 있었을테니 아예 싹을 잘라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덩케르크>에는 전쟁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떠한 신파도 보이지가 않는다.

 

4. 100분 간 계속되는 전장 속의 서스펜스

덕분에 <덩케르크>는 좀 더 리얼한 전쟁 영화로 거듭날 수 있었다. 언제 적군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장 속의 모습을 잘 재현해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은 더더욱 사실감을 부여한다. 상황에서

집중한 덕분에 관객 역시 그 상황 속에 몰입하게 되고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안심하는 순간 자신에게도 총알이 날아올 것 같기 때문에.

 

덩케르크는 지금까지의 전쟁 영화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다르다는 것이 어떤 분들에게는 반감을 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놀란의 새로운 시도가 이번에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결말부에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 살아남은 병사들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노인의 대사를 인용하며 오늘 칼럼을 마치고자 한다.

 

'저흰 그저 살아 돌아왔을 뿐인걸요.'

'그거면 됐어.'

 

칼럼소개: 영화 칼럼이 영화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칼럼은 하나의 견해를 제시할 뿐 영화에 대한 실질적 감상은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영화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영호의 무비칼럼]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