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의 철학칼럼 8] 아직 답을 모르는 철학 - 경험론

작은 의문에서 시작한 큰 물음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눈앞에 놓인 사물을 인식해왔다. 경험으로 사물을 인식하느냐, 아니면 이성으로 사물을 인식하느냐 이 두 가지 갈래는 수 세기를 싸워왔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앞으로도 미궁이겠지만, 분명 인식론에 대해 아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인식주체가 있다. 이 주체는 태어날 때부터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innate capacity)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주체가 대상을 경험(인식)하는데, 이 대상 역시 특성이 있다. 바로 ‘선재성’이다. 선재성에 대하여 사전은 ‘시간적·심리적으로 앞서는 성질로 예를 들면 경험론에서 감각은 지성에 시간적·발생적으로 앞서 존재한다는 것 따위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선재성을 통하여 대상은 주체로부터의 독립성을 전제로 가지게 된다. 인식 주체가 대상을 경험하면서 대상과 주체 간의 ‘관념’이 생겨난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우리가 만들어낸 관념과 대상이 항상 같은가?

 

만약 관념과 대상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이것은 진리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대상과 관념이 일치할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상식적 실재론자들이다. 외부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존재하고 이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의 감각기관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세계와 감각을 통해 인지한 세계는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회의주의자들이 반박한다. 그들이 반박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네 가지로, 감각이 착각일 수 있다는 점과 장자가 호접지몽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자체가 꿈일 수 있다는 점, 환각일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기억과 논리의 정확도 의심이다.

 

이 반박들을 딛고 상식적 실재론을 넘어서자고 한 것이 존 로크(J. Locke)의 대표실재론이다. 존 로크는 제 1성질과 제 2성질로 대상이 가진 다른 성질을 설명한다. 제 1성질이란 모든 사람이 같이 경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예를 들자면 농구공을 보며 동그랗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 2성질은 제 1성질과 다르게 각자 다르게 느끼는 부분인데, 이것이 착각의 원인이 된다. 감각을 동원하는 제 2성질은 농구공을 보며 주황색이라고 내가 느낀다면, 다른 사람은 농구공이 노란색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착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성질을 설명하여 존 로크는 상식적 실재론을 넘어서려 하였다. 그러나 존 로크의 사상 역시 비판이 존재했다. 먼저 1차 성질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냐는 것이다.

 

존 로크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 백지상태(blank state)로 태어난다고 하였는데, 백지상태에서 어떻게 1차 성질을 획득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내가 경험한 내용이 실제 세계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감각을 통해 얻는 증거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결코 외부세계에 대해 감각을 거치지 않은 직접적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이 비판은 ‘객관적 평가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로 제기되곤 한다. 이 두 가지 비판이 존 로크에 대한 주류적 비판들이다.

 

  

 

존 로크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간 것이 버클리(G. Berkeley)이다. 버클리는 경험론자라기보다는 관념론자에 가까웠는데, 그는 선재성 자체를 부인하면서 본유관념은 신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과 외적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경험과 경험 사이의 관계였다. 버클리는 경험과 경험을 비교해가며 진리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비판은 ‘두 경험이 옳은지에 대해 실제 세계와의 비교가 필요하지 않느냐’였다.

 

 

  

 

다시 버클리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간 것이 데이비드 흄(D. Hume)이다. 그는 극단적 회의주의자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원인과 결과라는 관념은 주위에서 인과관계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끊임없이 봐오면서 형성된 습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흄은 사람들이 어떤 한 대상에 대해 특정 인상을 받게 되면 자동으로 그 특정 인상을 기반으로 만들어냈던 특정 관념을 떠올린다고 말하며, 이때 사람들에게 인과관계가 생겨났고 이 인과관계는 단지 하나의 습관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흄의 철학에서 이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철학이 불가능해진다는 역설이 나온다.

    

 

  

 

평소 우리가 가볍게 여겼을 수 있는 인식에 대해 많은 철학자는 엄청난 고민을 하였다.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과는 정말 저렇게 생긴 것이 맞을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 온 것이 실은 모두 착각은 아닐까? 작은 의문에서 시작하여 큰 물음으로 다가오는 인식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철학이다.

 

칼럼 소개 :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논제에 수많은 가치와 관점을 담을 수 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학문이며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한 학문입니다. 칼럼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철학으로 한 발짝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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