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의 사회칼럼 8] 살충제 계란, 그 책임은?

한껏 목청을 뽑던 수탉과 꼬꼬댁거리는 암탉은 농장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을 상징했다.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던 암탉은 모성애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한가롭고 평화로운 농장을 상징했던 닭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이윤을 위한 착취의 농장이 되었다.

 

조류독감사건(AI)에 이어 이번에는 살충제 계란 파동이 우리를 혼란으로 이끌었다. 농장주들은 피프로닐 성분이 들어있는 살충제를 닭에 몸에 생기는 벼룩, 진드기 퇴치를 위해 살포했다. 피프로닐 성분은 소, 돼지, 닭, 그리고 인간이 섭취해서는 안 되는 성분이었다. 본래 닭은 ‘모래 목욕’을 통해 스스로 청결을 유지한다. 또한, 닭 자체가 면역력 키워지면 닭에게 좋지 않은 살충제를 뿌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냅킨 1장 정도의 밀집 사육장에서 키워온 닭들은 면역력이 상실되었다. 밀집되어 있는 공간에서 면역력이 약한 닭의 몸에 있는 진드기, 벼룩들은 쉽게 번식했다. 그리고 살충제를 살포했다. 언제부터 우리는 닭들을 밀집 사육장 안으로 집어 넣어버린 걸까?

 

 
닭은 기계가 되었다. 아니, 사람들이 닭을 기계로 만들었다. 60년대 초부터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고자 닭을 밀집 사육장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비자 욕구는 실현되었다. 원래 야생 닭은 달걀을 5~10개 낳아 알들을 품는 데 열중한다. 알을 21일 동안 품어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어나면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한다. 이러한 주기로 닭 한 마리는 1년 동안 달걀 50~60개를 생산한다. 그러나 요즘 양계장은 닭이 알을 품을 수 없다. 닭들은 1년에 300개의 달걀을 낳는 막노동을 하고 있다. 숨 막히게 좁은 생활환경은 닭들을 심한 스트레스로 내몰리게 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닭들을 이해하고 충분한 공간과 돌아다닐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데, 오히려 닭들의 부리를 자르고 있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부리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들은 혐오스러운데도 합법적이다. 농장주의 주요 관심사는 닭의 체중을 늘리고, 수명을 최대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닭들을 숨 막히는 좁은 공간에서 많이 먹이고,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 제한된 공간에서 수천 마리는 살충제를 맞으며 알을 낳는 중노동을 하다가 죽는다. 닭에 대한 혐오스러운 관행을 논하기 전, 동물이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 물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됐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창세기 2:19-20

 

 
성서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이름을 부여했다. 이는 우리가 동물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동물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임무를 다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감정을 둔화시키고 도덕심을 약화하며 서서히 타락하도록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는 동물을 학대하면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인간은 더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학대는 사회의 조화를 깨뜨리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공장식 농장에서의 동물들의 학대는 어쩌면 근본적으로 우리 자체를 망가뜨리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더 먹기 위해서, 더 벌기 위해서 동물들이 본능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동물과의 암묵적 합의를 깬 것이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이나 동물들의 착취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주로 탐욕스러운 축산업자나, 유통업자, 국가 등을 탓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자다. 소비자는 엄청난 이윤 중심주의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조류독감(AI), 살충제 계란을 비롯한 많은 사건이 의식의 전환을 이룬 것 같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소비자 즉, 우리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악순환은 계속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동물을 닭을 사랑하자고 외치지만 돈의 위력 앞에서는 그저 다들 잇속 챙기기 바쁘지는 않은가? 우리가 먹는 달걀, 고기는 싸구려가 아닌 동물들의 고통에서 나왔다.

 

 
산업화와 대량 축산업의 발달로 우리는 많은 양의 고기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자연스러운 삶의 환경을 빼앗긴 끔찍한 조건 아래 인간의 먹이가 되어버린, 또 실험 대상이 되어버린 동물들은 증가하였다. 이 역설적인 사건의 주체는 우리다. 우리의 태도가, 지금 나의 태도가 어떠한 태도인지 점검해보아야 할 때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기본적인 인식에 대한 고민, 다양한 가치관과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동물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해보라. 우리는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시작된 동물의 역설적 문제를 알게 되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남의 탓만 하는 파동이 아닌, 나의 탓 해보는 시간이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들여다보면 그 나라의 도덕 수준을 알 수 있다.”-마하트마 간디

 

 

 

칼럼 소개 : 사회.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알아가기 위해 사회란 분야의 칼럼을 쓴다. 사회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이고, 이곳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다. '사회'라는 세상의 스토리를 읽으며 한쪽 눈을 뜨길 소망한다.

 

참고도서: 안토니 F. 괴첼,<동물들의 소송>,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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