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영화 '화장', 오상무의 선택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과부인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어머니는 어린 딸, 즉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 [화장]에서 오상무가 병든 아내를 간호하고 있는 상황, 그의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과 어울린다. 이렇듯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머니와 [화장]에서 오상무는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을 느낀다. 어머니는 5살배기 딸과 ‘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사랑 손님과의 사랑을 포기하고 만다. 그렇다면 오상무는 ‘아내’를 선택한 걸까. 무엇에 의해 판단을 내린 걸까.



‘화장’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얼굴을 치장하는 ‘화장’과 죽은 사람의 뼈를 태우는 ‘화장’으로 말이다. 오상무의 아내는 뇌종양 환자이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아내의 얼굴에서 화장은커녕, 생기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화장품 회사의 상무인 오상무와 대조 된다. 남편(오상무)이 회사에서 가져온 화장품을 아내는 자기는 이제 쓸 일이 없다며 다른 이에게 미련 없이 넘기는 장면이 그렇다. 뇌종양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란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화장]에서 추은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같은 구절이 반복된다. 그녀의 이름 ‘추 은 주’ 입술이 동그랗게 모이는 이 발음은 오상무의 마음을 끈다. 오상무가 추은주를 향한 마음을 영화는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무용 공연을 보게 된 오상무는 무용가 사이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추은주를 본다. 오상무가 무대 위로 올라가 추은주를 찾기도 한다. 심지어 오상무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도 추은주를 떠올린다. 이것들은 마치 늙고 병든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을 추은주에게서 찾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내가 죽고, 화장의 두 번째 의미가 드러난다. 오상무는 죽은 아내의 물건들을 모조리 태운다. 이때 오상무는 아내의 지갑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사진을 주머니 속에 넣는다. 지갑 속에 남편의 사진을 항상 지니고 다녔을 아내와 추은주를 생각하는 오상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오상무는 이에 대한 자신의 성찰일까. 아내의 마지막 흔적을 남기려는 걸까. 오상무는 추은주를 선택하지도, 아내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는 별장에서 추은주를 피하듯. 아내와 추은주 사이의 내적갈등을 회피한 것이다. 오상무는 ‘가벼워진다’와 ‘내면 여행’이라는 광고 문구 중 ‘가벼워진다’를 선택하게 된다. 오상무의 내적 갈등 속 ‘내면 여행’을 회피함으로써 오상무의 생각이 ‘가벼워’ 진 것이다. 그렇다고 오상무의 마음이 ‘가벼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왠지 모를 죄책감과 찝찝함 속에 살았던 오상무는 지난날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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